제주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유기한 고유정이 법정에서 또 우발적 살인을 주장했다. 그는 “잠깐만 가만히 있었다면 살인마라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지법 형사2부(정봉기 부장판사) 심리로 고유정 사건에 대한 4차 공판이 30일 오후 제주지법 201호 법정에서 열렸다. 고유정은 지난 5월 25일 제주의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은닉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고유정은 연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섰다. 예전과는 달리 법정에 입장할 때 만큼은 고개를 들고 얼굴을 노출했다. 그는 이날 직접 쓴 의견진술서를 10분 가량 읽었다. 총 8페이지 분량으로 작성된 진술서를 읽는 내내 울먹였다.
그는 이날도 역시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 전 남편 강모씨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성폭행 피해 상황을 거듭 강조했다. 고유정은 “저녁을 먹은 뒤 아이가 수박을 달라고 했다. 칼로 (수박을) 자르려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사람(전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 가슴과 허리를 만지기 시작했다”며 “다급하게 부엌으로 몸을 피했지만 칼을 들고 쫓아왔다. 뭐하는 짓이냐고 물어봐도 ‘가만있어’라며 계속 몸을 만졌다. (전 남편이) ‘네가 감히 재혼을 해! 혼자만 행복할 수 있냐’고 말하며 과격한 모습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살인 정황도 상세히 설명했다. 고유정은 “칼이 손에 잡혔다. 눈을 감고 그 사람을 찔렀다. 현관까지 실랑이를 벌였고 그 사람이 힘이 많이 빠진듯 쓰러졌다”며 “아이를 재우고 밤새 피를 닦았다. 한 순간에 성폭행과 죽음이라는 순간을 겪게 돼 제정신이 아니었다. 미친짓이었고 반성하고 깊이 뉘우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아이가 눈치챌까 봐 저항할 수도,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었다. 잠깐만 가만히 있었을 걸 후회한다. 그러면 살인마라는 소리도 안 들었을 것”이라며 “내가 저지르지 않은 죄로 처벌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 순간 방청석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특히 유족들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멈추라” “다 거짓말!”을 외쳤다.
고유정 측은 지난 12일 재판에서도 “피고인은 6년의 연애 기간 내내 순결을 지켰다. 혼전순결을 지켜준 남편이 고마워 성관계 요구를 거절한 적이 없다”며 “변태적인 성관계 요구에도 사회생활을 하는 전남편을 배려했다”고 주장했었다.
고씨는 지난 16일 열린 3차 공판에서 1차 공판 때 하지 않았던 모두진술을 하겠다고 요청했다. 재판부가 거부하자 고유정은 거듭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고 받아들여졌다. 다만, 진술서는 본인이 수기로 직접 작성할 것을 명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