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가 하도급 업체가 개발한 태양광 스크린프린터 기술을 빼돌려 자사의 태양광 관련 제품 개발에 이용했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검찰 고발·시정명령 등의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30일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한화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8200만원을 부과하고 법인과 담당 임직원 3명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화는 2014년부터 이듬해까지 하도급 업체로부터 제출받은 태양광 스크린프린터 관련 기술자료를 토대로 유사한 스크린프린터를 자체 제작, 생산한 혐의를 받고 있다.
태양광 스크린프린터는 태양광전지 제조에 필요한 핵심 장비 중 하나다. 프린터가 잉크를 종이에 인쇄하듯 액화 금속 전극물질(가루)을 실리콘(웨이퍼) 기판 표면에 인쇄해 원하는 형태와 두께로 회로 선로를 형성시키는 장비다.
한화는 2011년 3월 하도급 업체와 한화 계열사에 태양광 전지 제조라인을 공급할 때 태양광 스크린프린터 제조를 위탁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 하도급 업체는 한화의 요구에 따라 그해 11월부터 2014년 9월까지 스크린프린터 관련 기술자료를 제출했고, 2015년 11월 하도급 계약이 해지될 때까지 제품의 설계 변경, 기능개선, 테스트 등 기술지원을 제공했다.
그런데 한화는 2014년 9월 이 하도급 업체로부터 마지막 기술자료와 견적을 받은 뒤 며칠 지나지 않아 10월 초부터 이 업체에는 자체 개발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신규 인력을 투입해 스크린프린터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한화 측의 혐의가 드러난 결정적 증거는 한화가 고객사인 한화큐셀 독일연구소와 주고받은 이메일이었다. 한화는 2014년 10월 자체개발을 위한 배치도와 프린터 헤드 레이아웃 도면을 작성해 한화큐셀 독일연구소에 자사의 자체 개발 스크린프린터를 소개하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했다. 특히 한화큐셀의 질문에 대한 답변 과정에서 기존 하도급 업체가 개발한 것을 토대로 스크린프린터를 제작할 계획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가 포착됐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이 이메일은 원래 삭제됐지만, 공정위는 조사 과정에서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삭제된 이메일과 첨부된 파일을 복원했다고 한다. 한화는 이듬해 7월 스크린프린터 자체 제작을 완료하고 한화큐셀 말레이시아 법인에 출하했다.
한화는 이에 앞서 2012년 5월에는 매뉴얼 작성에 필요하다며 하도급 업체에게 태양광 스크린프린터의 부품 목록 등이 표기된 도면 제공을 요구해 제출받았다. 2014년 5월에는 납품 타진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스크린프린터 세부 레이아웃(기계나 설비의 세부적 배치방법) 도면을 CAD파일로 받기도 했다. 공정위는 한화의 이러한 기술자료 요구는 수요처나 공동영업을 위한 목적을 넘어선 요구로 판단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대기업이 하도급 거래 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받아 자체 제품을 개발·생산한 행위에 대해 제재한 첫 사례”라며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원한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기술을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