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 전 국가주석은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망루에 올라 “오늘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수립됐다”고 선포했다. 괴멸직전의 중국 공산당이 대장정(大長征·1934~35년))을 거쳐 서북부의 벌판인 산시성 옌안에 근거지를 마련한지 14년만에 이뤄낸 대역전 드라마였다. 마오쩌둥은 직전 열린 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중국인민이 떨쳐 일어섰다(站起來了)”고도 했다. 1942년 아편전쟁 이후 100년간 외세에 농락당한 굴욕의 역사, 악덕지주와 토호에 핍박받던 농민, 부패한 관료 등 구시대를 갈아엎고 인민이 주인인 신중국이 열렸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은 가시밭길이었다. 소련의 지원에 의존하던 경제발전계획은 실패했고, 1958년부터 시작된 대약진 운동은 재앙이었다. 강철 생산량에서 “7년안에 영국을 넘어서고 15년안에 미국을 따라잡자”는 구호 아래 마을마다 고로를 짓고 멀쩡한 쇠붙이까지 녹여 쓸모없는 선철을 만들어냈다. 고로의 땔감용 나무를 대느라 전국의 산림이 황폐화됐다. 참새가 농작물에 해롭다며 박멸 운동을 벌이자 병충해가 창궐했고 대기근이 이어졌다. 대약진운동 3년간 3000만~4000만명이 굶어죽었다.
1966년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또 다시 대 혼란에 빠졌다. ‘자본주의적 사상·문화·습관을 몰아내자’며 시작된 문화대혁명으로 대학은 문을 닫았고 각종 문화재가 파괴됐다. ‘반혁명 인사’로 지목된 수많은 지식인과 관리들이 어린 홍위병들 손에 끌려나와 조리돌림과 학대를 당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약 300만 명이 숙청되거나 죽었다고 전해진다. 신중국 초기 30년은 암흑기였다. 여전히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을 거론하는 것은 금기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후 최고 실력자인 덩샤오핑은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을 잠에서 깨웠다. 이후 중국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어느새 일본을 제치고 미국까지 위협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 자료에 따르면 1952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300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9년 GDP는 13조6082억달러로 452배나 늘었다. 1인당 GDP는 신중국 초기 119위안에서 지난해 6만4644위안으로 542배 늘었다. 중국의 GDP 순위는 1978년 세계 11위였으나 2010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2위 경제 대국이 됐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서 200여종의 공산품 생산량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 GDP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대 1%대에 머물렀으나 2012년 11.4%, 2018년 15.9%로 증가했다. 중국 외화보유액은 1978년 1억6700만 달러에서 2006년 1조 달러를 돌파하며 일본을 제쳤고, 2018년에는 3조 달러를 넘어 13년 연속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 농촌 빈곤 인구는 1978년 7억7000만명으로 빈곤발생률이 97.5%에 달했으나 2018년말에는 1660만명으로 빈곤발생률이 1.7%로 줄었다.
중국은 1950~1970년대 인공위성과 원자·수소폭탄 기술을 확보했고, 2000년대에는 달 탐사, 양자과학, 위성항법 시스템 등 첨단 기술을 갖췄다. 산업구조가 선진화하면서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 같은 세계적인 IT기업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중국의 급속한 부상은 미국 등 서방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13년 취임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중국몽(中國夢)을 역설하자 중국의 패권 야심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추진한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대해 서방은 ‘빚더미 함정 외교’ ‘신 식민주의’라는 비판을 쏟아냈다. 2015년 발표한 첨단 제조업 육성책 ‘중국제조 2025’도 미국을 긴장시켰다. 시 주석은 또 집권 2기를 시작하며 2050년까지 세계 일류 군대를 건설하겠다는 ‘강군몽’(强軍夢) 청사진도 제시했다. 중국은 ‘신형 대국 관계’, ‘신형 국제관계’ 등의 외교용어를 제시하며 새로운 국제 질서를 만드는 ‘강대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12월 개혁·개방 40주년 연설에서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중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조용할 때를 기다리며 힘을 키운다)’ 외교노선을 사실상 폐기한 셈이다. 이는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을 꺾고 경제·군사적인 측면에서 패권국이 되겠다는 도전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무역전쟁을 선포하며 관세와 각종 제재 등 집중 공격을 퍼붓고 있다. 중국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해 중국 경제성장률은 28년 만에 최저치인 6.6%로 떨어졌고, 올해는 6.2%까지 추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무역전쟁 1년간 중국 제조업 일자리 500만개가 사라졌다는 보고서도 나왔다. 글로벌 기업들의 해외 탈출 움직임도 두드러진다.
중국은 홍군의 대장정(大長征) 정신까지 거론하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14억 인구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공산당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미 항전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장기전 태세다. 하지만 중국 내부적으로 느끼는 위기감은 심각한 수준이며, 공산당이 통제하는 중국이기 때문에 버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중국이 처한 위기는 시 주석의 장기집권 야심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의 임기제한을 철폐하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시 주석의 장기집권 길이 열렸다. 앞서 2017년 10월말 중국 공산당 19차 당대회에서는 ‘시진핑 사상’이 당헌에 삽입되면서 시 주석은 마오쩌둥 반열에 올랐다. 그동안 시 주석이 주창한 중국몽 등 각종 정책이 ‘시진핑 사상’의 근거가 됐다. 시 주석이 장기집권 구호로 ‘강한 중국’을 내걸면서 중국도 발톱을 너무 일찍 드러내 미국의 집중 견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시 주석 체제들어 사회 감시·통제 시스템을 강화된 것도 독이 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과거 문화대혁명 때보다 더 엄혹한 통제가 이뤄지고 있다는 공포감이 적지 않다.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장기화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중 정서는 대만까지 확산되면서 그동안 중국이 주장해온 ’일국 양제‘ ’하나의 중국‘ 원칙까지 흔들리고 있다.
인민일보는 “지난 70년 동안 중국은 일어섰고(站起來), 부유해졌으며(富起來), 강해졌다(强起來)”고 했다. 하지만 신중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은 지금 기로에 서 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