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개봉을 앞둔 조남주 작가의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은 왜 연예계 금서(禁書)가 됐을까. 이 책을 읽었다며 인증한 연예인들은 “페미니즘은 정신병”이라는 무차별적 사이버 불링을 겪었다. 이상한 점은 비난이 유독 여성 연예인만을 향했다는 것이다.
배우 서지혜는 지난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책 ‘82년생 김지영’ 사진을 올리며 ‘책 펼치기 성공’이라고 적었다. 이 책을 구입했고, 읽었으며, 공감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소설은 2016년 출간됐다. 주인공 김지영은 34살 전업주부다. 작가는 김지영이라는 인물을 통해 한국 사회 여성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그는 고용시장의 불평등을 겪었고 독박 육아를 감당했다.
서지혜가 게시물을 올리자 “페미코인 탄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몰랐든, 실수든, 의도였든 (페미니스트) 박제 당했다. 팔로우 끊고 간다”고 적었다. 또 다른 이는 “실망이 크다”고 썼다. 악성 댓글 대다수는 “남성 팬에게 인기 얻고 돈 벌었으면서 ‘페미 짓’을 한다”고 지적했다. 서지혜는 댓글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게시글을 삭제했다. 이후 올린 게시글에 배우 김옥빈은 “자유롭게 읽을 자유. 누가 검열하는가”라는 댓글을 남겼다. 비난은 김옥빈에게 이어졌다.
‘82년생 김지영’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이 책의 취지와 현실과 고통에 대다수가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백래시가 심각하다. 특히 여성 연예인들이 주요 타깃으로 보인다. 이 책을 인증했던 가수 아이린이 그랬고, 이 영화의 주연 배우인 정유미가 그랬다. 가수 핫펠트와 설현도 페미니즘 소신 발언을 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남성 연예인도 있었지만 이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았다. 그룹 방탄소년단의 RM과 방송인 유재석이 대표적이다. 고(故) 노회찬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이 말하는 성차별’에 대한 반감 커
황진미 대중문화 평론가에 따르면 일부 남성 집단은 남성 연예인이 이 책을 읽는 것과 여성 연예인이 이 책을 언급하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남성은 단순히 이 책이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에 읽어보는 것이고, 여성은 자신도 차별을 받은 피해자이기 때문에 선언하는 차원에서 이 책을 읽는 것으로 해석한다.
현재 일부 남성 집단은 페미니즘 돌풍으로 인해 자신들이 역차별 피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여성이 ‘차별’을 말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지나치게 큰 것으로 보인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남성이 ‘여성이 말을 하는 시대’에 대한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백래시는 이에 따른 혐오적 표현이라고 했다.
미투 운동의 여파라는 분석도 있다. 미투 고발을 피하기 위해 현실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하는 남성이 늘면서 이런 불편함을 온라인 상에서 표출한다는 의미다. 때문에 오히려 온라인 상에서는 젠더 갈등이 과잉됐다고 봤다. 이들에게 여성 연예인은 페미니즘을 저격하기 위한 사이버 불링의 가장 좋은 타깃이었다.
위근우 대중문화 평론가는 “환멸난다. 여혐 대 남혐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 불균형 자체가 여혐이라는 걸 왜 모르나”라며 “이 와중에 바른 말로 힘 보태준 사람이 김옥빈 배우 하나인 것도 너무나 상징적이다. 사실 별다른 생각 없었는데 ‘82년생 김지영’ 영화 (관객수) 1000만 가자”고 비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