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몸의 감각과 호흡, 에너지가 공연예술의 특별함이죠”
극단 초인의 <스프레이(Spray)>가 2019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아시안 아츠 어워즈에서 ‘베스트 테크니컬 프로덕션’(작품기술상)과 ‘베스트 디렉션’(연출상)을 수상했다. 배우 이상희 1인극 <맥베스(Macbeth)>는 공연전문언론사 《더 스테이지》가 개최하는 ‘더 스테이지 에든버러 어워즈’(THE STAGE Edinburgh Awards)에서 ‘베스트 연기상’을 수상했다. 창단 16년 만에 권위 있는 세계연극축제에서 별점 4∼5개를 받으며 이레적인 찬사가 쏟아졌고 아시아 팀으로는 유례없는 3관왕을 차지했다.
연기상은 올해 영국 에든버러 공연축제에 참가한 3000여 편이 넘는 작품을 대상으로 까다롭게 심사해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배우 10명에게 주어지는 권위 있는 상이다. 현지 평론가는 “맥베스의 고뇌와 욕망의 연기는 전율이 일어날 정도였다. 인물의 감정을 배우의 몸의 모든 감각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고 했다. 배우로는 최고의 찬사였고, 데뷔 25년만의 성과였다. 대학에서는 보건 관리학을 전공하고 극예술연구회에서 연극을 접한 이상희(48)는 극단 ‘미추’와 ‘작은신화’를 거쳐 2003년도에 박정의 연출과 극단 ‘초인’을 창단했다.
<기차>, <선녀와 나무꾼>, <특급호텔>, <스프레이>, <원맨쇼맥베스>, <눈 뜬 자들의 도시>에서도 배우로서 타고난 기량을 보여주었지만 몸과 신체연기의 감각이 발달한 이 배우에게 국내 연기상은 늘 비켜갔다. 작은 체구로 무대를 허들선수처럼 뛰고 달리며 강렬한 에너지와 연기로 등장인물의 ‘체온’을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이상희는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듯 다양한 표정과 제스처로 인터뷰를 이끌었다.
-현지 언론은 ‘맥베스’의 새로운 해석과 배우의 에너지, 그리고 인간의 격렬한 욕망을 배우의 감각과 움직임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더군요.
“이 작품은 ‘맥베스’에 대한 연민에서부터 시작했어요. ‘넌 왕이 되겠지만, 그게 끝이야’라는 마녀의 예언에서 느끼는 맥베스의 분노가 오늘날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와 맞닿아있다고 느꼈죠. 우리 역시 일상에서 여러 욕망을 안고, 그걸 이루기 위해 달려가지만 끝까지 갈 수 없는 그 한계선이 느껴지는 거죠. 말하자면 희망고문이랄까요. 수많은 사람이 원하는 곳까지 다다르기 위해 온갖 치장을 하지만, 결국 그곳에 도달하는 사람은 단 1% 뿐이잖아요. 그 좁은 문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마치 다 열려있는 세상인 듯 포장하는 것에 대한 분노… 맥베스에게는 마녀의 예언이 희망고문이었겠죠. 그러나 맥베스의 욕망은 예언, 즉 운명 너머를 좇아가잖아요. 그걸로 만족하거나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운명을 바꾸겠다 마음먹죠. 그래서 살인까지 저지르지만, 결국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죠. 그래도 맥베스는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지만 현실 속 우리는 그렇지 못하잖아요. 점점 사회적으로 주어진 것에 더 이상 맞서 싸우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고 함구하며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지배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바뀌어가는 세상이 과연 옳을까. 그래도 맥베스처럼 내가 칼 맞아 죽더라도 불나방처럼 욕망을 향해 뛰어드는 게 아름다운 거 아닌가. 그런 생각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배우로 현지에서 극찬도 받았고 3관왕의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죠.
“<맥베스>는 2010년 초연한 후 10년째 조금씩 발전중인 작품이에요. 아무래도 이번 에든버러에서는 언어로 인한 한계가 컸죠. 물론 피지컬한 면이 강한 작품이지만 언어도 많이 사용해요. 관객이 무대에만 온전히 집중하면 좋은데, 한국어로 공연하니 영어자막과 배우를 번갈아보게 되잖아요. 그게 아쉬웠어요. 혹시라도 나중에 해외공연을 가면 되도록 언어를 줄여 현지어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스프레이> 역시 마찬가지였죠.”
-이상희 배우는 ‘언어’ 보다는 ‘몸’을 많이 쓰는 배우라는 평가도 하더군요.
“에든버러에서 어떤 평론가가 이렇게 말했어요. “이 작품은 다른 배우가 하는 걸 상상하기 어렵다” 개인의 치열한 삶과 경험을 보여주기에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그렇기에 배우가 달라진다면 역시 다른 인생이기에 작품도 달라지겠죠. 앞서 설명했듯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가 ‘욕망’이잖아요. 배우인 나 역시 유명세, 명예, 돈을 향한 욕망을 물론 가지고 있지만, 그걸 이 세상에서 이루기에는 너무 힘들잖아요. 이 작품을 연습할 때마다 박정의 연출가가 그런 말을 했어요. “연습을 못 보겠다. 내 아픔을 외치고 있는 것 같아서”. 처음엔 왜 저렇게까지 힘들어하지, 이해를 못했어요. 당시에는 그만큼 제가 욕망이 없기도 했고요. 그런데 이제는 알 것 같아요. 욕망 자체보다 그것이 벽에 부딪히면서 오는 자괴감… 살아가면서 길이 보이지 않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점점 작품에 다가간 것 같아요”
-극단의 연극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에든버러 축제에 참가하는 게 쉬운 결정이 아닐 겁니다.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재정적으로 항공·숙박료 일부를 지원받았지만 전체 금액의 1/3 수준이라 수천만 원을 지출하고 돌아오게 돼요. 공연 수익은 극장과 축제 측에서 가져가기 때문에 극단은 한 푼도 못 가져오죠. 그런 지점에서 본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무모한 선택이죠. 처음부터 극단 초인은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때문에 지난 2008년까지는 아비뇽과 에든버러 등 국제연극제에 꾸준히 참여했죠. 사실 당시에는 심사위원이나 언론보다는 일반 관객 반응이 좋았어요. 이를 계기로 2013년까지는 해외 초청 공연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이후로는 해외공연을 할 기회가 뜸해졌죠. 결국 내가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싶으면 투자를 해서 작품을 보여줄 수밖에 없겠구나. 정공법을 선택한 거죠. 다시 한 번 초인의 작품이 세계무대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이번에 이를 심리적으로는 확인했으나 별반 달라지는 건 없는 거 같아요.”
-박정의 연출가와 99년도에 결혼식을 올렸죠. 연극인 부부로 살아간다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저희는 일단 가고자 하는 목표점이나 좋아하는 작품 성향이 아주 비슷해요. 함께 작품을 보면 그에 대한 호불호가 95% 일치하죠. 그런 지점에서 호흡이 잘 맞아요. 물론 살면서 싸울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연습에 직격탄이 되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려고 해요. 티를 안 내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나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우려하는 건, 배우와 연출가로서 사로에게 거리감이 존재할 때 나올 수 있는 태도가 있잖아요. 그걸 나도 모르게 무시하게 되는 실수를 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죠”
-어느 배우는 연극은 ‘ 종교와 같다’ 라고 말하더군요, 배우로 데뷔 25년을 달려가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타고난 성향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을 극단적으로 두 부류로 나눈다면, 좋아하는 게 여러 군데로 뻗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 가지를 선택해 그것만 파고 들어가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나 박정의 연출가는 후자에 치우쳐 있어요. 인간관계에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에너지가 솟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희는 새로운 사람에게는 잘 다가가지 못하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는 걸 편하게 느끼는 성향이에요.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연극이라는 작업 자체에 재미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대학에서 동아리활동을 통해 가볍게 접했지만, 점점 빠져들었죠. 연극이 가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일이라면 부끄럽지 않으면서 평생 당당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초반에는 오랫동안 연극배우라고 말을 못했어요. 스스로 실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기에 자신감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연극을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올해 에든버러에서 연기상을 받은 걸 보고 우리나라 연극계 연기상들을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몸의 감각은 배우연기에 생명인데요. 아직까지 국내에서는 신체, 움직임보다는 언어(화술) 중심으로 배우를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지 않은가. 이젠 그 경계를 허물어야 하지 않나, 생각을 했습니다.
“일정 동감하는 부분이 있어요. 국내 연극계에서는 어디에서도 초인 작품이 시상 후보로 선정된 적이 없어요. 주목받지 못하는 거죠. 이전에 <기차>라는 작품으로 거창국제연극제 경연부문에 참가했었는데, 무언극이라는 이유로 희곡심사에서 0점을 받았어요. 지문만 있을 뿐이지 대사가 없다고요(웃음). 그래서 금상을 받았죠. 어떤 원로선생님께서는 저희 연극을 보시고는 “왜 말을 안 해. 연극이라고 못 하겠어”라고 대놓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직 참 벽이 크구나 느꼈어요.”
-연극에서 배우의 ‘말’이 흐르지 않는다고 희곡심사에서 ‘0점’을 받을 때 극단이나 배우로서 느끼는 한계나 아쉬움도 있을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이 길을 선택했으니까요. 그런 거 같아요. 화술, 기본기라는 게 있잖아요. 어릴 때는 그것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걸 꽤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무대에 선 제 모습이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더라고요. 외모가 평범한 편이라 무대에서 어떠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기에 조금 부족하다 생각했어요. ‘이상희’라는 정체성이 갖는 특별함이 없다고 느껴졌죠. 내면에 특별하고 싶은 욕망이 저를 담금질 했어요. 어떻게 하면 독특한 배우가 될 수 있을까. 그런 걸 고민하면서 에너지가 강한 신체언어를 선택한 거예요. 사실 이쪽으로 가다 보니 일상적인 연기를 하면 뭔가 안 한 거 같이 느껴져요. 이쪽이 저에게는 재밌어요.”
-연기적으로도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것 같은데요. 몸의 감각을 깨우기 위한 배우 연습 과정이랄까요. 어떤 방식으로 등장인물을 만들어 가나요?
“일단 캐릭터를 찾으려고 해요.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이해해야 하니까요. 대본이 있는 경우는 사실 대본 속에 인물이 들어있기에 그 인물과 나를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밟으면 되지만, 창작일 경우 인물을 새로 설정해야 하니 조금 더 어려워요. 그래서 시행착오도 많이 거쳐요. 연출가가 생각한 인물유형에 들어오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그런 과정이 지난하죠. 그 인물이 저에게 들어와야 몸이 움직여져요. 예를 들어 소심하고 찌질한 인물이라면, 그 호흡을 찾고 그 호흡이 몸을 움직이게 하죠. 이후 그 인물이 만나는 상황에 따라 몸이 가는 거예요. 무엇보다 집중하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배우의 ‘호흡’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상희는 표정과 손동작을 변화 시키며 캐릭터 특징을 연기하며 표현했고, 표정은 진지했다.
“작품마다, 또 인물마다 달라요. 만약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럼 외부로부터 몸을 사리고 주위를 계속 살피겠죠. 그럼 내 몸이 이 호흡 때문에 자연스럽게 두려움에 떠는 듯한 이러한 자세가 나오게 돼요. 이게 바로 그 인물의 기본자세가 되는 거죠. 그런 게 한 개씩 보태지면서 인물의 걸음걸이, 움직임, 자세 등이 호흡을 통해 만들어져요. 이후 아무 상황을 설정해보고 그 인물로 움직여보는 거예요. 이 인물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무슨 일을 할까? 그런 상상을 하는 거죠. 작품 속 장면이 정해지면 그 속으로 들어가고요. 그런 선택 과정을 거쳐요.”
-극단 초인, 이상희 배우가 꿈꾸는 연극은 다를 것 같습니다.
“정말 모르겠어요. 사실 지금 하는 작업을 꾸준히, 또 열심히 하는 것 이외에는 별 계획이 없어요. 식상하지만,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극장에서 보는 연극은 그만의 특별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TV드라마,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무언가요. 성공적이든 아니든, 그걸 향해서 가고 있어요. 도대체 무엇이 연극만의 특별함일까. 결국 배우의 몸, 관객이 현장에서 느끼는 배우의 호흡과 에너지가 공연예술의 특별함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나는 게 채플린의 딸과 그 손녀가 배우래요. 그 손녀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이미 몇 년 치 티켓이 매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공연의 장면 장면을 영상으로 보는데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닮아있었어요. 그걸 보면서 내 몸이 저 정도가 되면 좋겠다, 저런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죠. 물론 바람이지만 극단 초인 작품도 전 세계가 주목해 몇 년 치 티켓이 매진되고,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상희 배우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진지했다. 데뷔 25년 만에 연극배우로는 에든버러에서 큰 상을 받은 후 가난한 연극을 믿고 달려온 고단함과 피로감을 씻어낸 듯 보였다. 배우의 몸과 감각, 신체의 언어를 탁월하게 표현하는 이 배우를 25년 만에 알아 본 것이 국내무대가 아니라 연극과 배우들의 최대축제 도시인 ‘에든버러’였다는 점이 불편했다. 스스로를 당당하게 ‘배우’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고 하는 말에 배우도, 듣는 사람도 긴 사이가 흐르며 침묵과 표정으로 말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