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이번에도 ‘소비세의 저주’ 피할까

입력 2019-09-29 17:37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본에서 10월 1일부터 소비세가 8%에서 10%로 2%포인트 오른다. 아베 신조 내각은 소비세의 인상 이후 정권의 붕괴로 이어져온 ‘소비세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소비세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사람이 내는 간접세로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한다. 소비자 입장에서 9월까지 100엔짜리 물건을 살 경우 소비세 8%를 더한 108엔을 냈다면, 10월부터는 110엔을 내야 한다. 물건값이 올라가는 셈이어서 지난 수주간 일본에선 물건을 미리 사두려는 사람들로 쇼핑 붐이 불었다.

하지만 ‘선행 소비’가 일어나면 결국 소비세율 인상 이후엔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아베 총리가 당초 2015년 10월에 예정됐던 4차 소비세율 인상을 2017년 4월, 올해 10월로 2차례나 미룬 것도 그 때문이다. 증세를 단행하면 내수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침체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는 2012년 12월 2차 집권을 시작한 아베 내각 이전까지 소비세 도입과 인상은 예외 없이 당해 정권의 붕괴로 이어졌다. 1989년 소비세(3%)를 처음 도입한 다케시타 노보루 내각은 리크루트 비리 스캔들까지 겹쳐 3개월 뒤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패해 실각했다. 1997년 5%로 소비세를 끌어올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이듬해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해 물러났다.

민주당 정권 시절이던 2012년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국가 채무를 줄이고 사회보장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소비세 증세를 추지했다.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 공명당과 함께 기존 5%인 소비세를 2014년 4월부터 8%, 2015년 10월부터 10%로 올리기로 합의했다. 노다 총리의 민주당 정권은 결국 그 해를 못넘기고 자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2차 아베 내각은 민주당 시절 결정에 따라 2014년 8%로의 인상은 단행했다. 당시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부양책으로 회복세를 띠던 일본 경제는 소비세 증세 이후 한동안 침체를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은 10%로의 인상은 애초 계획됐던 일정보다 4년이나 늦춰 이행하게 됐다. 대신 소비세 증세 이후 이전 정권들이 붕괴한 점을 교훈삼아 경감세제 도입 등 다양한 보완책을 마련했다.

간접세인 소비세는 서민층일수록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지는 역진성(逆進性)이 문제로 지적되다. 아베 내각은 주류 등 기호품을 제외한 음식료품과 신문 구독료 등에는 기존 8% 세율을 유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내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중소 매장에서 신용카드 등으로 지불할 경우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로 최대 5%를 환원해 준다. 또 저소득층과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는 25%의 추가 구매력이 붙은 프리미엄 상품권을 줄 예정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번 소비세 인상으로 경감세액을 제외할 경우 연간 4조6000억엔의 추가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베 내각은 1조5000억엔을 올 10월부터 3∼5세 유아교육의 전면 무상화와 저소득층 0∼2세 보육의 무상화를 시행하고, 내년 4월부터는 소득 등을 따져 대학과 전문학교 등의 수업료와 입학금을 감면해 주는 고등교육 무상화 제도를 도입한다. 그리고 65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간병 보험료 경감 재원으로 일부 증세분을 쓸 예정이다. 다만 세수 증가분의 대부분을 애초 목표로 했던 재정적자 해소에 사용하지 않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노린 재원으로 사용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아베 네각이 소비세 인상을 단행했지만 최근 일본 경기가 좋지 않은 것은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한다. 재정지출 확대와 양적 완화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가 한때 빛을 보는 듯 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활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중 무역전쟁과 유럽의 경기 둔화 등에 따른 엔고 현상으로 출구가 안보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이 일본의 수출 규제로 촉발된 한·일 통상갈등에 따른 한국의 일본 제품 및 여행 불매운동도 일본 경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고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