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강 작가의 ‘빅팬’입니다. 스웨덴어로 번역된 소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강렬한 정서적 체험을 했어요. 한국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쁩니다.”
지난 27일(현지시간) 스웨덴 예테보리국제도서전(이하 도서전)에서 맨부커상 수상 작가 한강과 시인 진은영의 세미나를 들은 학교 선생님 노라(36)는 이런 소감을 전했다. 그녀는 “특히 소년이 온다는 아픈 역사(광주민주화운동)를 시적 언어로 풀어냈다”며 “이런 소설은 지금껏 읽어본 적 없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스웨덴 수교 60주년 기념 한국이 주빈국으로 참여한 이번 도서전은 세계 속 활짝 기지개를 켜고 있는 한국문학의 위치를 가늠하는 척도였다. 26일부터 4일간 열린 300여개 세미나 중에서도 한국 문인들의 대담은 세계 방문객과 출판 관계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강 진은영 두 작가는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1980년 광주, 세월호 참사 등에 관한 이야기를 45분간 풀어냈다. 120석을 메운 관객들 저마다 귀 기울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온 학생 슈미트(19)는 “부모님이 한강의 작품을 다 읽었을 정도로 가족 모두 한국 문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역사적 비극을 깊게 고민하는 자리가 됐다”고 했다. 이튿날 한강의 소설 ‘흰’ 세미나에 참여한 오사(32)는 “깊은 사고와 문장이 한국 작품만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문학은 최근 수년간 빠르게 비상해왔다. 은희경 이승우 김애란 편혜영 등 숱한 작가들의 작품이 아시아를 넘어 영미, 유럽권의 독자들을 만나는 중이다. 한국문학번역원 통계에서도 한국문학 작품 수출은 2015년 94건(번역원 통해 수출된 서적 기준)에서 2017년 130건으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세계 최고 독서 강국이자, 노벨문학상의 나라 스웨덴에서의 이런 열기는 한국문학의 세계적 가능성을 새삼 또렷이 확인시켜준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스웨덴어로는 1976년 김지하 ‘오적’ 이후 33종의 작품만이 출간됐는데, 지난해에는 김언수의 ‘설계자들’이, 올해에는 한강의 흰이 번역되는 등 속도를 올리고 있다. 스웨덴 권위의 문예지 10TAL은 최근 한국문학 특집호를 발간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같은 특수한 정치·역사적 배경과 역동성이 듬뿍 배어있는 한국문학의 정체성이 세계 팬들에게 어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강 작품의 스웨덴 출간을 총괄한 편집자 니나 아이뎀은 “정치 사회 여성 등 다양한 이슈가 녹아있는 한강 작품은 차별화되는 지점이 있다”고 했다. 도서전에 참여한 신용목 시인은 “이념, 젠더 등 다양한 문제에서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국 사회의 열기를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고 세계 팬들의 반응을 전했다.
뛰어난 텍스트는 뛰어난 번역을 거쳐 세계적 작품으로 거듭난다. 한국문화 전반에 관심이 커지면서 번역 저변도 나날이 넓어지는 중이다. 윤부한 번역원 해외사업본부장은 “스톡홀름대 한국어과를 예로 들면 2014년 한 학년에 25명이었던 인원이 지금은 60명 정도가 돼 일본어과 보다 정원이 커졌다고 한다”며 “해외 나라들에서 좋은 번역가가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했다.
예테보리(스웨덴)=글·사진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