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으로 행복한 ‘품세리 마을’ 만들어가요

입력 2019-09-28 13:52 수정 2019-09-30 15:42

“아파트를 짓겠다고 내 집을 허물면 그건 내가 허물어지는 것이여. 집은 삶의 족적이며 역사이자 가족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이 살아 숨 쉬는 곳이 잖여.”

오래된 주택 밀집 지역에서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주거환경을 개선해 온 지역 주민들이 도시재생의 가치와 공감을 담은 단행본 ‘집, 마을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품세리 마을 기획단)가 잔잔한 감동을 전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5동 442번지 품세리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다. 2017년부터 2년간 서울시도시재생지원센터와 함께 동네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해 왔던 마을주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도시재생사업의 가치를 자서전 형식으로 풀어냈다.

품세리 마을은 조선 시대의 역사기록에도 자료가 남아있다. 사람들의 거주 역사가 300년이 넘는다. 특히, 이 지역은 개인의 사유 토지 경계선을 기준으로 골목길이 형성되거나, 대지 경계선이 분할돼 과거의 토지변천 관계를 추정할 수 있는 토지의 DNA가 그대로 보존된, 몇 안 되는 마을이라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있는 곳이다.


‘품세리마을’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주거 환경 개선의 뜻을 ‘품’은, 이웃 정이 담긴 마을 문화를 지켜가자는 의지를 ‘세’운, 서로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행복한 사람으로 정을 나누며 살아가려는 꿈을 ‘이(리)’루려는 마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마을주민들이 스스로 지은 동네 이름이다.
이 책은 발간사, 품세리마을의 도시재생 이야기, 품세리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마을자서전), 봉사자 등 활동가들의 후기와 주민 활동사진 등 총 250쪽 분량으로 구성돼 있다.

“이 이야기는 남편도 모르는 일인데…”
“내 딸이, 혼주가 알면 절대 안 되는 사연이 있는데…”
“어디까지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데…”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인데 왜 지금 와서, 그 과거를 다시 생각해야…”

책은 마을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온 9명의 평범한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회상하면서 도시재생의 의미와 가치를 이슬비 내리듯 잔잔하게 풀어낸다. ‘윤순분-뚱이는 나 혼자 키우는 게 아닙니다’ ‘성순자-우리 집 옥상은 남편의 놀이터’ ‘윤종춘-자서전을 쓰고 나서 수면제 안 먹어’ ‘이명숙-제 삶을 돌아보게 되었던 것에 감사’ ‘김선숙-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 ‘정옥희- 집은 우리 가족의 추억 앨범’ ‘김명자-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일깨워 줘’ ‘윤순숙-이웃들의 가슴에 남는 사람으로 살고파’ ‘유제영- 이 마을에서 살면서 이루고 싶은 꿈들’


교보생명보험 임원을 지낸 김정태 자서전 봉사자는 자서전을 통해 몸 밖으로 나온 지난 세월 살아온 응어리를 응축해 놓은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구술하기 시작한 지 10여 분이 채 안 돼 눈물과 한숨과 한숨이 이어졌다고. 참여한 분들의 가슴속의 한은 통곡의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면서 “자서전 쓰기는 무엇보다도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아 성찰의 과정으로 참여한 분들 모두 남은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며 내 인생의 행복 가치를 찾아가는 보람 있는 자서전 활동”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 책은 인류문화학적인 관점에서 집과 골목길, 마을을 해석할 수 있는 도시재생사업을 꿈꾸는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입문서로 추천할만하다.
조진형 품세리마을기획단 대표는 “마을을 지켜나가기 위해 헌신적으로 도시 재생사업에 참여하신 주민들이 왜 도시 재생을 꿈꾸게 됐는지를 자서전 형식으로 진솔하게 표현했다”면서 “이 책은 300년이 넘는 주거역사를 지닌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마을 공동체를 만들어낸 신길 품세리마을의 골목길과 집,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시재생 사업의 가치와 공감대 형성의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고 밝혔다.

품세리마을 도시재생희망지마을 서인숙 활동가는 활동가 후기를 통해 서로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집과 길, 마을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분들에게 집은 삶의 발자취이자 가족의 역사이기에 억만금을 준다 해도 자기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을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민 스스로 마을 주거 환경을 바꿔 보자는 뜻을 품은 착한 사람들, 사람의 정이 담긴 마을 문화를 지켜 가자는 의지를 가진 마을 공동체, 서로 정을 나누면 살아가려는 꿈을 간직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신길동 품세리 마을이 바로 그곳입니다.”


자원봉사자로서 희망지 사업 과정을 기록사진으로 담은 서울 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낸 김영조 활동가는 ‘그곳에 가면 향기가 납니다’는 후기를 남겼다. 마을이 변화해 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보며, 이런 동네가 서울에 있다고 하는 사실에 신기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그는 “도시재생 사업은 지역 정체성 기반의 문화 가치와 경관 회복을 위해, 쇠퇴 구도심 등이 보유하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활용하여 품격이 있는 공간을 조성하고 문화서비스를 확충하는 기능을 한다”면서 “품세리 마을은 주민들의 적극적인 도시재생에 대한 의지와 실천역량 그리고 그분들이 가진 ‘집’에 대한 가치 인식을 고려할 때 도시재생 사업의 주체로서 부족함이 없다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동원 공간활동가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시간이 지나면 낡게 되지만, 그 안에서 그 사람이 만든 이야기는 우리의 문화가 되고 우리 집의 감성이 된다”면서 “시간과 문화가 담긴 그런 집을 재개발이라고 하는 제도로 훼손한다면 지금 사는 어르신들이 만들어온 마을 이야기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품세리 마을은 이웃사촌과 나누는 정이 있는 마을, 골목길에 뛰어노는 어린아이들이 있는 마을이다. 오래되었지만 문화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엮은 ‘집, 마을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노인의 지혜가 함께 어우러지는 행복한 마을을 가꾸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들로 가득하다.

책 맨 뒤에는 사진으로 보는 품세리 마을 도시재생사업 활동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희망돋움 1단계 사업부터 ‘마을 골목길 벽화’ ‘환경개선 작업’ 등 현재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도시재생을 위한 환경개선 사업 주요 장면들이 화보로 정리돼 있다.


품세리마을 도시재생 노래
(곡 만남)

도시-재생은 우연이 아니야
이것은 우리의 바람- 이었어
헐-기엔 너무나 소중한 집이기에
이생명 다하도록 여기서- 살리라
고쳐가며 살고 재생하며 살아-
아~ 도시재생 사업 계속-가리라
사랑해 품세리 너를 우리 품세리
사랑해 품세리 너를 우리 품세리
사 --- 랑---- 해----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