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의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주요 파생상품들이 올해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100만건 이상 판매되면서 잔액이 50조원까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최근 5년간 손실이 확정된 상품의 규모가 600억원으로 집계되면서 투자 시 유의가 필요하다.
26일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최근 5년간 16개 시중은행의 증권형 파생상품 판매 현황 자료’에 따르면 파생상품인 ELT·DLT·ELF·DLF의 판매 잔액이 2015년 30조원대에서 지난달 7일 현재 49조8000억원대로 1.5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동안 가입 건수도 66만8000여건에서 100만건으로 40만건 가까이 늘었다.
ELT(주가연계특정금전신탁)는 ELS(주가연계증권)를, DLT(파생결합증권신탁)는 DLS(파생결합증권)를 편입한 ‘신탁’ 상품이다. ELF(주가연계펀드)와 DLF(파생결합증권펀드)는 ELS와 DLS를 각각 편입한 ‘펀드’다. 각 상품마다 구조는 다르지만 기초자산의 가격 변동에 따라 수익과 손실 정도가 정해지는 구조로, 모두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이러한 특징 탓에 최근 5년간 시중은행이 판매한 ELT·DLT·ELF·DLF 중 손실이 확정된 상품의 규모는 604억원(976건)으로 나타났다. 은행 중에서는 농협은행이 판매한 DLF(172억원)가 손실확정 규모가 가장 컸고, 기업은행의 ELT·DLT·ELF(155억원), 씨티은행 ELT·DLT(147억원) 등 순으로 손실확정규모가 컸다.
한편 상품구조가 복잡함에도 장년층에 집중적으로 판매된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는 은행을 방문한 장년층에게 은행 창구 직원이 권유한 영향이 큰 것으로 추정됐다. 올해 판매된 상품 3건 중 1건은 60대 이상(33만8560건)이었고, 전체 잔액의 40%(19조5299억원) 가까이가 집중됐다. 80대 이상(1만4120건·1조4895억원)도 규모가 작지 않았다.
특히 프라이빗뱅커(PB·22만9068건)보다 일반창구(73만8614건)를 통한 가입이 3배 이상 많아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 들른 장년층이 주 판매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원금 보장이 되지 않음에도 판매 실적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건 은행들이 예대마진 수익에 의존해오던 기존 구조에서 탈피해 비이자 수익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은행은 이 같은 파생상품을 판매할 경우 통상 판매 금액의 1% 안팎으로 수수료를 받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수입원이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 판매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낮은 예금이자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투자 욕구가 맞물리면서 파생상품의 인기는 연일 식을 줄 모르고 고공행진 중이다.
이에 대해 제 의원은 “최근 원금 손실이 나타나고 있는 DLF 사태는 금융당국이 2015년 사모펀드 판매 규제를 완화한 결과”라며 “공모펀드의 규제를 우회해 판매되고 있는 파생상품들에 대한 총체적인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우리은행이 판매한 26일 만기의 DLF 원금이 ‘전액 손실’로 확정되면서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최근 5년간 시중 은행이 판매한 파생상품의 손실확정 규모가 600억원을 돌파한 것을 가볍게만 볼 수는 없게 됐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6일 “금감원의 검사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 방안을 협의할 것”이라며 다음달 1일이나 2일 중으로 검사 중간결과를 발표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이 결과를 토대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