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 절차 착수의 도화선이 된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후폭풍이 미국 사회를 집어삼키고 있다. 스캔들을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중앙정보국(CIA) 소속 당국자인 것으로 알려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고발자에게 관련 정보를 넘겨준 백악관 당국자들을 색출해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공화당의 결사항전을 주문했다. 대통령이 진영 갈라치기를 주도하면서 미국 사회가 양극단으로 쪼개지는 모습이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26일(현지시간) 이번 스캔들을 폭로한 내부고발자가 정보기관 감찰관에게 제출한 9쪽짜리 고발장을 공개했다. 고발서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미 대선에서 외국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신의 힘을 남용했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전날 공개된 녹취록 내용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뒷조사를 하도록 압박했고,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와 윌리엄 바 전 법무장관이 이번 사안에 깊이 관여돼 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나아가 백악관 고위 관리들이 통화 기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은폐를 시도했다는 주장도 담겼다.
내부고발자의 신원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뉴욕타임스(NYT)는 3명의 소식통을 인용, 이 고발자가 백악관으로 파견됐다가 복귀한 CIA(중앙정보국)의 분석 요원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이 요원이 현직 대통령과 외국 정상의 통화 내용을 다루는 커뮤니케이션팀에서 근무하지는 않아 문제의 통화 내용을 직접 듣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고발장에서 “공직을 수행하며 여러 미 정부 당국자들에게서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외국을 개입시키기 위해 대통령직을 이용한다는 정보를 받았다”며 “거의 모든 사례에서 당국자들의 설명이 일치했기 때문에 동료들의 얘기가 믿을만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발장의 내용을 ‘전해들은 정보’로 평가절하하며 고발자에게 통화 내용을 알려준 백악관 당국자들을 색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이날 유엔주재 미국대표부 직원들에게 “누가 내부고발자에게 정보를 줬는지를 알기 원한다”며 “그것이 스파이 행위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똑똑했던 과거 시절 스파이나 반역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며 엄포를 놨다.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DNI)은 내부고발자를 위한 변호에 나섰다. 조지프 매과이어 DNI 국장대행은 정보위 청문회에 출석해 “고발자는 내부고발 절차의 모든 단계를 따랐다.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그를 지지한다. 고발 내용을 믿을 수 있고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매과이어 대행은 고발자 보호를 넘어 선거개입을 미국이 맞은 최대 도전과제로 정의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공격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이 러시아나 중국, 북한, 이란의 공격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며 “우리의 최대 도전과제는 선거 제도의 무결성을 확실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 스캔들의 성격을 민주당의 사기극으로 규정하며 지지층 결집을 시도했다. ‘외세를 활용한 대선 조작 시도’라는 사태의 본질을 호도해 탄핵 정국을 돌파하려는 의도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민주당원들은 공화당과 우리가 옹호하는 모든 것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며 “공화당원들은 함께 뭉쳐 강력히 싸우라. 나라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