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의 무력이 국제무대에서도 돋보일 수 있을까. 지난 7월 열린 아시아 대항전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한 담원 게이밍의 탑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은 “해외팀이 더 편하다”면서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서의 활약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지난 24일 서울 영등포에 있는 담원 숙소에서 장하권을 만났다. 올해 초 인터뷰에서 “4~5위로 플레이오프만 가도 다행”이라고 했던 그는 이날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꿈으로만 생각했던 롤드컵이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왔다”면서 기대를 드러냈다. 그가 고대하는 롤드컵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롤드컵 첫 출전이다. 떨리진 않는가.
“해외를 처음 나간다. 예전에 제주도 가느라 비행기를 1시간 탔는데 귀가 너무 아팠다. 13시간을 탄다니 좀 걱정된다. 큰 문제 없이 롤드컵에서 폼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유럽 음식이 짜다고 하던데.
“그런 말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유럽이라 나을 것 같다.”
-롤드컵 조 추첨 결과가 나왔는데.
“조 편성 자체만 놓고 보면 만족스러운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플레이-인 스테이지에 진출한) 해외 팀들을 잘 모른다. ‘후니’ 허승훈이 소속된 팀(클러치 게이밍) 정도만 알고 있다. 일단 플레이-인을 무사히 넘겨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플레이-인 조 편성의 만족인가, 그룹 스테이지까지 염두에 둔 만족인가.(※담원은 그룹 스테이지 진출 시 ‘죽음의 조’로 꼽히는 A, C조를 피한다.)
“사실 누굴 만나도 도전이 될 것 같다. 당장 깊이 생각하기보다 가서 부닥치자는 마인드다. 매 순간 앞에 보이는 도전에 집중하고 싶다. 사실 지금은 실감이 안 나고, 비행기 타고 가야 비로소 현실감각이 생길 것 같다. 킹존을 이기고 롤드컵 진출을 확정했을 때도 실감이 안 났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막상 현실이 되니 감이 안 오는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 이르게 꿈이 현실이 됐다. 올해 초 시즌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저희 폼이 완전하지 않았고 제 경기력에도 불만이 많았다.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가 목표였는데, 롤드컵에 가게 됐다. 운도 좋았던 것 같지만, 특히 ‘쇼메이커’ 허수가 잘해준 게 정말 크다. 허수의 폼은 모두가 알아준다. 폼에 기복이 없고 항상 잘하는 것 같다.”
-롤드컵 진출을 확정하고 팀원과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선발전 후에는 바로 휴가를 가서 팀원과 얘기를 많이 나누지 못했다. 선발전 전에 얘기를 많이 했다. 롤드컵을 가는 것과 안 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이고, 이 경기에서 결과가 나오니 열심히 하자는 거였다. 저희가 원래 강압적인 피드백보다 다독여주는 피드백을 많이 했는데, 킹존전에선 좀 빡세게 했다. 처음엔 흔들렸지만, 롤드컵에 반드시 가야한다는 이야기를 계속 했다.”
-킹존이 ‘도장 깨기’를 하며 올라올 때 부담이 있었을 것 같은데.
“저희가 킹존에 전적이 안 좋고, 직전에 도장깨기를 하며 올라온 SKT에게 완패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1, 2세트를 하면서 긴장이 풀리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에서 실수해서 역전을 당했지만, 경기력 면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봤다.”
-담원이 긴장을 많이 하는 팀으로 알려져 있지만, 지난 7월 리프트 라이벌즈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해외 팀에 강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해외 팀에게 강하다는 것에 공감한다. LCK는 겁먹고 들어가는 게 많은 것 같은데, 해외 팀과 하면 부담 없이 할 수 있다. 국내 팀에 겁먹는 건 아무래도 노련한 선수들이 많고, 서로 잘 알기 때문이다. LCK에서 제 약점을 잘 아니까 더 어려운 것 같다. 저희 팀 특성상 처음 붙는 상대에게 더 좋은 것 같다. 더 재미있고, 긴장도 덜 된다.
-너구리의 육식 스타일이 롤드컵에서도 통할까.
“과거에 만난 은사께서 제게 하셨던 말씀이 있다. ‘다른 건 바꿔도 공격적인 스타일은 가져가야 살 수 있다’는 거다.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금까지 해왔다. 공격적인 스타일이 극상으로 가면 가장 완벽한 탑라이너가 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반면 이 스타일은 폼이 안 좋으면 팀에 독이 된다.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우리 편을 찌르지 않게 상대를 잘 노려야 한다. 우리편 정글러가 탑 라인에 신경쓰지 않도록 잘해야 한다. 그러면 ‘캐니언’이 캐리한다.(웃음) 아니면 종종 제가 캐리할 수도 있다.”
-혹시 잡식을 할 생각은 없나.
“이 스타일을 안 하면 잘하지 못할 것 같다. 이 스타일로 제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지금 메타는 아무래도 탱커가 나오기 힘들다. 버프를 받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탱커를 한다면 예전에 ‘마린’ 선수처럼 ‘뒷텔’을 쓰는 등 주도적으로 하고 싶다.”
-이전 인터뷰에서 롱주 시절 ‘칸’ 김동하를 존경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가장 잘하는 탑라이너를 꼽는다면.
“‘더 샤이’ 강승록 같다. 공격적으로 하는데, 갱을 잘 안 당한다. 힘이 정말 세기 때문에 상대가 갱을 와도 2대1 상황을 허용하지 않는다. 솔로랭크도 하고 관전도 많이 했는데 2대1 각을 안 주면서도 자기 정글이 왔을 때는 활용을 잘한다. 힘이 세면서 똑똑하기 때문에 완성형이라는 느낌이다. 저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부러질 때가 많다.”
-가끔 너구리의 스트리밍 방송을 보면 대회 이상으로 공격적으로 하던데.
“요즘 제가 솔로랭크에서 ‘트롤’이다. 잘할 때 잘하는데 못할 때는 못한다. 8연패 후 10연승을 하고 그런다. 기사를 하면 확실히 데리고 가는데, 기사 폭행도 잘한다.”
-롤드컵에서 만나고 싶은 팀이나 선수가 있나.
“팀은 G2(유럽)와 인빅터스 게이밍(IG, 중국)이다. G2는 한 번도 못 만나봐서 궁금하다. 엄청 잘한다고 하는데 궁금해서 만나고 싶다. IG는 저희 팀과 비슷하게 교전 중심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비슷한 팀을 이기면 더 강한 팀이라는 걸 보여주는 거기 때문에 기분이 좋다. 선수는 ‘더 샤이’를 만나고 싶다.”
-요즘 화제를 낳고 있는 G2를 평가한다면.
“가늠이 잘 안 되는 팀이다. 만나본 적이 없고 연습도 한 적이 없다. 소문만 들었다. 저희가 SKT와는 여러 번 경기를 하면서 굉장히 잘한다는 생각을 했다. 이보다 더 빡빡하게 잘 하려나 의문이 든다. 솔직히 SKT가 다시 G2를 만나면 이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확언할 수 없는 건 지난 MSI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너구리를 만나고 싶어 하는 탑 라이너가 많다. 너구리가 만나고 싶은 탑 라이너를 더 얘기해 줄 수 없나.
“리닝 게이밍(중국)의 ‘플랑드레’와 징동 게이밍(중국)의 ‘줌’ 선수를 만나고 싶었다. ‘줌’은 단단한 플레이가 인상 깊었다. ‘플랑드레’는 게임을 보는 눈이나 템 트리가 특이하고 연구도 많이 한다. 예전에 오른과 쉔이 한창 나왔을 때 쉔으로 도벽을 들고, 이후엔 딜템을 가더라. 깜짝 놀랐다. 연구하는 게 남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너구리도 연구를 많이 하지 않나.
“저도 연구를 좋아한다. 어떻게 카운터를 치고, 어떻게 아이템과 룬을 갈 것인가를 많이 생각한다. 룬의 경우 하나씩 다 보고, 상대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걸 좋아한다. 특히 도벽 룬을 좋아한다. 이론적으로 도벽을 들고 죽지 않으면 돈을 더 많이 쌓아서 이길 수 있다. 정복자와 도벽이 비슷하다. 정복자는 룬으로 상대를 때린다.”
-다른 선수의 플레이를 보고 연구를 많이 하나.
“방송이나 관전을 하면서 룬과 아이템을 많이 본다. 괜찮다 싶은 건 직접 연구한다. 초반 라인전이 어려운 챔피언의 경우, 살짝 방식을 바꾸면 플레이가 편할 때가 있다. ‘이대로만 가면 된다’는 심리적인 부분에서 영향이 있다.”
-롤드컵은 9.19패치로 하는데.
“무엇보다 판테온이 필밴이 될 것 같다. 포지션을 돌릴 수 있고 마땅한 카운터가 없다. 그나마 탑에서 갱플랭크가 있다. 하지만 탑보다 미드가 더 맞는 것 같다. 까딱하면 판테온이 바텀 다이브를 가면 골치 아프다. 레넥톤은 여전히 괜찮을 것 같다. 돌릴 수 있고, 엘리스-레넥톤이 너프되지 않아서 할만할 것 같다. 퀸도 뜰 것 같다. 레넥톤의 대항마로 퀸을 요즘 많이 한다. 대회에는 안 나왔지만 레넥톤을 풀고 퀸을 선택하는 메타가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제부터 LoL을 했나.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경기도 보고 직관도 갔다. ‘루퍼’ 장형석(전 삼성 화이트) 선수를 좋아했다. 랭크게임을 본격적으로 한 건 프로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때였다. 프로생활 하면서 숙소에서 솔로랭크를 쭉 돌렸다. 그때 개인적으로 SKT의 ‘후니’ 허승훈 선수가 정말 힘들었다. 만날 때마다 졌다. ‘이형 너무 잘한다’ 싶었다. 한창 탑 피즈할 때다. 이후에는 만날 수 없었다.”
-해외 경기를 챙겨보는가.
“중국 경기를 많이 본다. 개인 화면을 볼 수 있어서 좋다. ‘더 샤이’ 선수의 경기가 올라와서 봤는데 견제를 빡빡하게 잘 하더라.”
-롤드컵에서도 견제를 많이 당할 것 같은데.
“폼이 좋으면 갱이 와도 흘릴 수 있다.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 된다. 설령 갱을 당해도 큰 영향이 없는, ‘당해도 괜찮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정글 쓰는 걸 별로 안 좋아한다. 우리 정글이 파밍을 하면 나중에 더 활약한다. 억지로 부르면 서로 불편할 수 있다. 요즘 폼이 안 좋아서 억지로 부를 때가 있었는데, 이런 부분에서 제가 더 발전해야 팀이 올라올 것 같다.”
-일을 낼 수 있을까.
“제 폼만 잘 올라오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수 한 명 한 명이 다 잘한다. 일단 해외 팀을 만났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롤드컵 간 것은 운이 컸다고 생각한다. 한 경기 한 경기마다 운으로 이긴 때가 많았다. 꿈에 그리던 기회가 왔다. 확실히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다. 담원 게이밍이 세계무대에서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
-‘칸’ 김동하가 해외 탑 라이너에게 ‘머리 박으라’고 했던 것처럼 너구리의 포부는 없는가.
“제가 아직 그 정도 말할 수 있는 경력은 아닌 것 같다.(웃음) 그건 일단 사리겠다. 결과를 보여줬을 때, 재밌는 한 마디를 하겠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