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그놈’ 연쇄살인 기간에 수원서 ‘흉기 들고 자택 침입’까지

입력 2019-09-26 16:39 수정 2019-09-26 16:50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연쇄살인 기간에 강도 미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이씨는 1989년 강도 예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씨의 1·2심 판결문에 따르면 그는 같은 해 9월26일 오전 12시55분쯤 경기도 수원 권선구의 한 주택에 미리 준비한 흉기와 장갑을 들고 침입했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됐다. 이씨의 범행은 미수에 그쳤다.

1990년 2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씨는 항소했다. 같은 해 4월 2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이씨가 강도 미수를 저지른 1989년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하지 않은 해다. 연쇄살인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매년 최소 1차례에서 최대 4차례 발생했다. 다만 8차 사건(1988년 9월16일)과 9차 사건(1990년 11월15일) 사이에는 연쇄살인이 일어나지 않았다. 살인이 멈춘 이 기간은 이씨가 강도 미수를 저지르고 재판을 거쳐 2심 선고를 받은 기간이기도 하다.

그는 강도 미수 수사 때부터 여러 변명을 늘어놓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이씨는 1심 선고 이후 “낯모르는 청년으로부터 구타당한 뒤 그를 쫓다가 이 사건 피해자의 집에 들어가게 된 것일 뿐 금품을 빼앗고자 흉기를 휴대한 채 타인의 주거에 침입한 것이 아니다”며 항소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흉기를 가지고 걷다가 폭행을 당했고, 때린 사람을 쫓다가 남에 집에 들어가게 됐다는 주장이다.

이씨는 이후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직후에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이씨는 처제 살해 뒤 장인을 찾아가 “뭐 도와드릴 일 없느냐”며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고는 처제가 납치된 것 같다며 장인과 함께 파출소를 찾아가 실종 신고를 했다.

처제가 납치됐다면서도 전혀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씨를 수상하게 여긴 경찰은 처제가 살해되기 하루 전 이씨가 처제와 통화한 기록을 확보하고 추궁했다. 하지만 그는 명백한 기록 앞에서도 “그런 사실이 없다”며 발뺌했다.

이런 모습은 이씨의 자백을 이끌어내려는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씨는 5, 7, 9차 사건 증거물에서 자신의 DNA가 나왔음에도 지난 25일까지 5차례 이뤄진 경찰의 대면 조사에서 “나는 화성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1993년 7월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가 화성군 정남면 관항리 인근 농수로에서 유류품을 찾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일지
▲1차 사건
=1986년 9월 15일 오전 6시 20분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목초지에서 주민 이모(71·여)씨가 하의가 벗겨진 상태로 살해된 채 발견.

▲2차 사건
=1986년 10월 20일 오후 8시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에서 박모(25·여)씨가 나체 상태로 가슴에 흉기 자국이 난 채 피살.

▲3차 사건
=1986년 12월12일 오후 11시 화성시 태안읍 안녕리 축대에서 권모(24·여)씨가 스타킹으로 양손이 묶이고, 머리에 속옷이 씌워진 상태로 숨진 채 발견.

▲4차 사건
=1986년 12월14일 오후 11시 화성시 정남면 관항리 농수로에서 이모(23·여)씨가 스타킹으로 몸이 묶이고 중요부위 훼손된 채 피살.

▲5차 사건
=1987년 1월10일 오후 8시 50분 화성시 태안읍 황계리 논에서 홍모(18)양이 스타킹으로 몸이 묶인 상태로 숨진 채 발견.

▲6차 사건
=1987년 5월2일 오후 11시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야산 박모(30·여)씨가 소나무 가지에 덮인 상태로 숨진 채 발견.

▲7차 사건
=1988년 9월7일 오후 9시 30분 화성시 팔탄면 가재리 농수로에서 안모(52·여)씨가 블라우스로 양손이 묶이고 중요부위 훼손된 상태로 숨진 채 발견.

▲8차 사건
=1988년 9월16일 오전 2시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의 한 가정집에서 박모(13) 양이 살해된 채 발견. (모방 범죄로 알려짐. 피의자 검거)

▲9차 사건
=1990년 11월15일 오후 6시30분 화성시 태안읍 병점5리 야산에서 김모(13) 양이 스타킹으로 묶인 상태로 숨진 채 발견.

▲10차 사건
=1991년 4월3일 오후 9시 화성시 동탄면 반송리 야산에서 권모(69·여)씨가 하의 벗겨진 상태로 숨진 채 발견.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