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초동 미흡’ 고유정 전 남편 살해 막지 못했다

입력 2019-09-26 12:45 수정 2019-09-26 14:59

지난 25일 경찰이 고유정의 의붓아들 사망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고유정을 지목했다. 지난 3월 2일 고씨의 의붓아들이 숨진 지 6개월여 만이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 신병확보를 하고 고씨를 대상으로 적극 수사했다면 제주도에서 전 남편의 살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청주 상당경찰서는 고씨를 살인 혐의로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25일 고씨가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6월 1일 긴급체포된 뒤 경찰은 뒤늦게 강제수사로 전환했다. 경찰은 지난 6월 고씨와 그의 현재 남편 A씨(37)를 의붓아들 B(5)군 사망 사건과 관련해 살인과 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입건해 수사해왔다.

하지만 이미 고씨는 B군의 사망 직후 청주 아파트에서 피가 묻은 이불을 버리는 등 범행의 결정적인 증거를 감추려고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벌인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약물 감정 결과와 범행 전후 고씨의 행적,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의 수사자료 분석 등을 통해 고씨를 뒤늦게 최종 피의자로 판단했다.

경찰이 확보한 정황 증거는 A씨의 체내에서 검출된 수면제 성분이다. 경찰이 아닌 A씨가 검찰에 요청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검사 당시 A씨의 체내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A씨는 고씨를 살인혐의로 제주지검에 고소한 뒤 6월 18일 고소인 진술 당시 머리털이 아닌 모근을 포함한 체모를 채취한 약물검사을 요청했다. 이 검사에서 ‘알프람정’(수면유도제)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약물은 고씨가 지난해 11월 제주도의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경찰은 고씨의 휴대전화 등에서 B군이 숨진 날 새벽 고씨가 잠들지 않고 깨어있었다는 정황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고씨가 사건 당일 사망 추정 시각을 전후해 인터넷 검색을 했다는 기록도 경찰에 넘겼다.

A씨의 변호인은 26일 A4용지 4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통해 “경찰이 이 사건 발생 직후부터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최소한 A씨와 고씨를 용의자로서 동일선상에 두고 면밀히 수사에 착수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범행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이는 베개, 담요, 이불 등의 물리적 증거 방법과 사건 직후의 생생한 고유정의 진술을 확보했어야한다”고 말했다.

이 변호인은 “경찰은 지난 4월 30일 부검결과가 나온 이후에도 고유정를 단 15분 간의 참고인조사만을 하고 고유정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고유정을 피의자로 입건해 구체적인 수사가 진행됐다면 고유정이 제주도로 유유히 건너가 지난 5월 23일 전 남편을 살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사건은 단 하나의 피해자만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찰의 부실한 초동수사와 그에 이어진 경각심을 갖추지 못한 수사진행으로 A씨는 현재까지도 수사를 받고 있다”며 “경찰이 늦게나마 수사의 미흡함을 확인하고 증거자료를 보완해 결국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결정을 하여 준 것에 대해 안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 사건이 결과적으로 상식의 선에 부합하는 길에 들어서게 됐다”며 “피해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B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10분쯤 청주에 있는 고씨 부부의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당시 집에는 고씨 부부뿐이었다. 경찰은 지난 5월 통보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에서 “특정 부위가 아닌 전신이 10분 이상 강하게 눌렸을 가능성이 크며 사망 추정 시각은 오전 5시 전후”라는 소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A씨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함께 잠을 잔 아들이 숨져 있었다”며 “아내는 다른 방에서 잤다”고 진술했다. 그는 “경찰 초동 수사가 나에게만 집중돼 이해가 안 됐다”며 ‘고유정이 아들을 죽인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제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와 법률전문가들은 그간 확보한 고씨 부부의 진술, 수사 자료를 분석해 고씨가 현재 결혼 생활에 B군이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에 대해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이 사건은 결과적으로 경찰의 부실 수사를 입증하게 됐다”며 “사건 발생 초기부터 체계적이고 면밀하게 수사가 이뤄지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청주=홍성헌 기자 ad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