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처럼 일그러지는 얼굴 사진 …파리 테러 충격을 담은 어윈 올라프 개인전

입력 2019-09-26 09:24 수정 2019-09-26 21:27
어윈 올라프, '불안해 하는 사람들(The troubled)', 2016.

가부키 배우 같은 흑백 얼굴에 입술만 빨갛게 도드라지는 얼굴 초상이 도열해 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그 얼굴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고 입술은 우로 좌로 비비 꼬이며 마치 도미노처럼 변한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길 공근혜갤러리의 어윈 올라프(60) 개인전에 나온 작품 ‘불안해하는 사람들(The trobled)'(2016)은 이렇게 인간이 가지는 불안을 사진과 영상의 경계에서 절묘하게 표현한다. 올라프는 네덜란드의 주요 사진작가 가운데 1명이다. 그는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바타클랑 극장을 포함해 시내 여러 곳에서 테러 사건이 일어난 뒤 사람들에게 이 사건에 대한 느낌을 얼굴 표정에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찍은 450컷의 사진이 이 작품의 원천이다. 사진이 차르르 넘겨지게 함으로써 동영상 같은 효과를 냈다.
어윈 올라프, '팜 스프링스-연' , 2018. 공근혜갤러리 제공

올라프는 초상 사진의 대표 작가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2010년대 들어 스튜디오를 벗어나 대도시 풍경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전시에 나온 것은 베를린(2012)과 상하이(2017)에 이어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 남부 고급 휴양지 팜 스프링스(2018)를 찍은 것이다. 소풍 나온 듯 한 흑인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구경할 게 없는지 황폐한 대지를 딛고 풍력발전기 날개가 돌아가는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덤불에는 성조기로 만든 연이 찢어진 채 걸려 있다. 10년 전만 해도 목가적인 풍경을 연출했던 이곳은 환경파괴로 사막화되면서 이처럼 건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이런 지역을 배경으로 미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의 양극화, 정치적 갈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다. 백인에게 천국이라 할 수 있는 팜 스프링스이지만 가난한 흑인 모녀가 소풍갈 수 있는 곳은 버스로 이동할 수 있는 먼지 날리는 사막뿐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사진을 통해 던지고 있다.

지난해 네덜란드 라익스 국립미술관에서는 렘브란트 반 레인, 얀 스테인 등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거장들의 작품과 올라프의 작품들을 병치하는 전시를 했다. 렘브란트 자화상과 올라프의 초상 사진을 나란히 세운 그런 전시는 그를 네덜란드 미술사의 주요 작가로 편입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갤러리측은 밝혔다. 10월 6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