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자금이 투입된 아시아나항공을 대기업에 통째 넘기는 것은 배부른 재벌들에게 혈세를 몰아주는 것이다. 단순 경제논리로만 추진하는 매각은 호남의 숨통을 끊겠다는 조치다”(시민단체 대표).
“부채 절반이 항공기 장기리스 비용이라는 현실을 감안할 때 광주·전남의 상공인들이 십시일반 힘을 합친다면 아시아나항공을 충분히 되찾을 수 있다”(광주시 공무원).
“광주은행과 금호타이어에 이어 대표적 연고기업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다른 대기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가면 호남기업은 씨가 마르게 된다”(지역 상공인).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을 국민기업으로 전환하거나 호남기업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지역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6월 출범한 ‘아시아나항공지키기광주시민대책위’와 광주상공회의소 등에 따르면 최대주주(33.5%)인 금호산업과 매각 주관사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예비입찰 절차에 들어가 유수의 대기업들이 매각참여를 본격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현재 적격 예비 인수후보(쇼트리스트)가 4곳으로 좁혀든 상황이다.
국내 2위 항공사로 77개 노선을 운항 중인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되기 위해 대기업들은 물밑에서 본입찰 등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회장이 이사회 의결을 거쳐 매각 결정을 발표한 지 5개월여 만이다.
하지만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공적자금이 투입된 아시아나항공을 대기업에게 헐값 매각하는 것은 호남기업의 발판을 흔들고 다른 기업에 특혜를 베푸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거액의 국민세금을 들인 기업을 손쉬운 M&A(인수합병)를 통해 재벌에게 넘겨주려 한다”며 “특혜에 가까운 매각 작업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금호아시아나는 광주·전남의 대표적 향토기업으로 지역민의 지속적 성원을 밑거름으로 성장해왔다”며 “금호아시아나가 심장이나 다름없는 아시아나항공을 빼앗긴다면 경제민주화에도 역행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1990년대까지 재계 서열 10위권을 유지하던 호남 대표기업 금호아시아나는 지난해 기준 4개의 상장회사에 총 자산 11조4000억원, 매출 9조7000억원으로 28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매각이 초읽기에 들어간 주력계열사 아시아나항공까지 넘겨줄 경우 60위권의 중견기업으로 밀려나게 된다.
지역 상공인들도 “아시아나항공 부채 절반이 항공업 특성상 고가의 항공기에 대한 리스비용으로 알고 있다”며 “부실경영 책임은 물어 마땅하지만 경제 논리와 명분에만 몰입해 알짜기업을 무조건 팔아넘기는 것도 온당치 않다”는 반응이다. 상공인들은 “다른 대기업에게 특혜를 준다는 시비를 벗기 위해 아시아나항공을 국민기업이나 광주 시민기업으로 전환하는 게 어떠냐”며 “일본의 훗카이도 항공이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흑자로 전환한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정부가 기회를 제공해준다면 최소한의 매각자금을 마련해 국민주나 시민주주 모금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 관가에서도 “광주은행과 금호타이어에 이은 아시아나항공 매각 소식에 대한 지역민들의 불안과 탄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무엇보다 광주·전남의 열악한 경제사정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무원들은 “아시아나가 다른 대기업으로 넘어가면 세수와 고용창출은 물론 일자리 창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일자리를 지키는 차원에서라도 아시아나항공이 호남기업으로 남았으면 한다”는 입장이다. 금호아시아나는 2018년 사옥매각 등을 통한 자구노력에도 고유가의 영향으로 영업이익이 급감했다. 반면 금융채무는 일반대출 5000억원, 항공기 리스비용 1조3000억원 등 3조4000억여원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된데다 채권단의 자금지원 중단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져 있다. 2018년 기준 임원 41명, 조종사 1581명, 승무인력 3814명, 정비 1339명 등 1만137명을 고용 중이다.
광주시 이병훈 문화경제부시장은 “향토기업을 더 이상 내주지 말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며 “정치와 경제 논리를 분리하자는 데 동의하지만 정치권의 속 깊은 배려가 아쉽다”고 말했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