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서 발견된 DNA와 일치했는데…직접증거 없어 ‘카페 여주인 살해’ 무죄

입력 2019-09-25 17:21
뉴시스

10여년 전 카페 여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30대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1심은 남성의 DNA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물 속 DNA와 일치하는 등 간접증거를 토대로 징역 15년을 선고했으나 2심과 대법원은 ‘범행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사건은 다시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뉴스1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5일 카페 여주인을 살해한(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모(38)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2심은 1심에서 박씨를 유죄라고 판단했던 ‘오전 4시30분~8시 사이 살인 발생’의 전제가 여주인 A씨(당시 40세)의 사망추정 시각과 배치되는 등 여러 이유를 들어 박씨의 유죄를 증명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옳다고 보고 박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박씨는 2007년 4월 24일 오전 4시30분쯤 경기도 수원의 한 카페에 들어가 A씨와 함께 술을 마시던 중 “대학 나와서 인력이나 다니고 왜 이런 데를 배회하느냐”는 말을 듣고 격분해 가지고 있던 흉기로 A씨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카페 종업원은 A씨가 사망한 채 쓰려져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 대해 유전자 감정을 실시했지만 범인을 찾지 못해 수사가 잠정 종결됐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한지 6년이 지난 2013년 7월 박씨가 수원에서 강도상해 혐의로 구속되며 그의 DNA가 과거 카페 싱크대에서 발견된 담배꽁초에서 채취된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박씨와 A씨의 유전자가 함께 묻어있는 두루마리 휴지도 증거로 제출됐다. 박씨는 당초 범행을 자백했다가 조사 과정에서 “당시 카페를 간 건 맞지만 주인을 죽이진 않았다”며 진술을 뒤집었다.

1심은 앞선 두 가지 증거와 더불어 박씨가 술을 마신 자리가 부자연스럽게 치워졌고, 사건 당일 오전 11시까지 카페에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정황 등을 박씨의 혐의를 입증할 만한 유력한 간접증거라고 판단했다. 이에 1심은 박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박씨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이 없는 것과 이러한 간접증거만으로 그의 범행을 입증하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1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구속수감 돼있던 박씨는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당시 A씨의 사망추정 시각은 오전 11~12시였다. 하지만 1심은 사건 당일 오전 4시30분에 종업원이 퇴근한 뒤 손님이 들어왔다는 종업원의 진술을 토대로 그 이후에 제3자가 카페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라 판단해 현장에 있던 박씨가 A씨를 살해했다고 봤다. 또 A씨의 사망 시각을 오전 4시30분~8시로 추정했다.

그러나 2심은 “과학적 방법에 의하면 A씨의 사망추정 시각은 대략 그날 오전 11시로 보인다”며 “당일 오전 11시까지 박씨가 그 카페에 체류하고 있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하는데 그 증명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를 들어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당일 새벽 박씨가 A씨와 술을 마신 사실은 맞지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에 2심은 “사망추정 시각을 볼 때 오전 4시30분에서 8시 사이 살인 범행이 일어났다는 전제가 처음부터 무너지는 결과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또 2심은 박씨와 A씨의 혈흔이 묻은 휴지도 박씨의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박씨가 처음 검찰에 송치됐을 때는 그 휴지가 증거물로 없었는지, 왜 그 휴지가 2016년에 발견됐는지 상당한 의문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현장에서 발견된 발자국이 박씨의 신발사이즈와 일치하지 않고, 경찰이 진술거부권과 변호인선임권을 고지하지 않고 자백을 받은 점도 무죄의 근거로 삼았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