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백남준’이라는 평을 듣는 재불 작가 김순기 회고전 ‘게으른 구름’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봉주르 백남준’이라는 이 영상이 증거 하듯, 전시장은 백남준의 작품 세계를 연상시키는 설치, 영상, 퍼포먼스, 개념미술 작품들로 가득하다. 이를테면 ‘O.O.O'라는 작품은 녹아내리는 얼음으로 만든 TV 모니터 모양의 조각이다. 개집 속에 TV가 있고 그 TV 안에 개가 있는 작품도 흥미롭다. 작업실 주변에서 수집한 돌멩이, 나무 등을 이용해 제작한 오브제와 퍼포먼스 영상도 볼 수 있다. 1973년의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 ‘조형상황 Ⅲ-보르도의 10월’은 수백 개의 풍선에 추를 달아 해수면에 두었다가 추를 잘라서 일제히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대형 야외 프로젝트를 기록하고 있다.
작가의 글에서 딴 전시 제목 ‘게으른 구름’은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근면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반발이기하다.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의 의미’를 주제로 비디오카메라를 메고 전 세계를 일주하며 촬영한 ‘가시오, 멈추시오’, 일반 카메라와 달리 오랜 시간 두어야 풍경이 잡히는 핀홀(바늘구멍) 카메라로 찍은 풍경 사진 등에서 그런 태도가 감지된다.
작가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 니스의 국제예술센터 초청작가로 선발돼 파리로 간 것이 계기가 돼 현지 유학을 하게 됐다. 이후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등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작품 세계 전반을 흐르는 아방가르드한 기운은 68혁명 이후 혁신적인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무르익었다. 국제적인 전위예술 운동인 플럭서스의 핵심인 존 케이지, 백남준 등과의 교유도 중요했다. 김순기는 1978년 한 워크숍에서 존 케이지를 만났고, 케이지의 소개로 백남준을 알게 됐다. 케이지는 피아노 연주는 안하고 관객이 내는 소음만 듣게 하는 등 우연적 요소를 음악에 도입한 ‘4분 33초’로 예술사에 획을 그은 작곡가다.
놀라운 것은 플럭서스의 세례를 받기 전, 대학시절부터 그에겐 아방가르드 기질이 있었다는 점이다. 캔버스를 잘라서 빨래줄에 걸고는 ‘소리’라고 명명한 것이 그런 예이다. 작가는 “회화는 사각틀에 갇히지만, 소리는 한계가 없어 좋았다”고 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등 세계 무대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한국에는 덜 알려진 여성 작가를 조명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내년 1월 27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