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의회 정회 막은 ‘여장부’ 지나 밀러는 누구?

입력 2019-09-25 15:47 수정 2019-09-25 16:16
반브렉시트 활동가 지나 밀러가 24일(현지시간) 영국 대법원의 '의회 정회' 위법 판결 이후 언론과 지지들에게 소감을 밝히고 있다. AP뉴시스

영국 대법원이 보리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결정을 위법으로 판단하면서 이번 소송을 주도한 지나 밀러(51)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반(反) 브렉시트 활동가인 밀러는 지난 2016년에도 영국 정부가 의회의 승인 없이 브렉시트 절차를 추진할 수 없다는 안건의 소송에서도 승리를 거둔 바 있다.

BBC 등 영국 언론은 24일(현지시간) 영국 정부 상대 소송에서 2번이나 승소하며 브렉시트 흐름을 바꾼 밀러에 주목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밀러는 남미의 영국령 가이아나 출신으로 인도계다. 현재 그의 성(姓)인 밀러는 세 번째 남편 앨런 밀러의 성을 따른 것으로 원래 성은 싱이다. 10살 때 영국에 유학온 그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금융계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이름을 날려왔다.

2007년 재혼한 남편 앨런과 함께 투자회사를 운영하는 그는 자선 활동과 시민사회 활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2009년 설립한 ‘진실-공정 재단’(the True and Fair Foundation)을 통해 소규모 자선단체의 자금 유치 활동을 돕는 한편 금융계의 투명성을 높임으로써 소비자나 기업인들이 금융 스캔들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자는 캠페인을 펼쳤다. 금융계의 잘못된 관행을 폭로하는 활동 때문에 당시 업계에서는 그를 ‘블랙 위도 스파이더’(암컷이 수컷을 잡아먹는 미국산 독거미)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는 지난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찬성으로 나오자 몸이 아팠을 정도로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주저앉는 대신 브렉시트와 관련된 법적 절차를 면밀히 검토했다. 그리고 그 해 의회의 승인 절차 없이는 브렉시트를 추진할 수 없다며 브렉시트 반대자들과 함께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유럽연합과 영국 정부가 합의안만 타결하면 브렉시트 협상은 종료된다는 테리사 메이 총리의 계획은 위헌 판결로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후 메이 총리는 합의안을 하원 투표에 부쳤다가 3번이나 실패해 총리직을 사임하기에 이르렀다.

반브렉시트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인 그는 반대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그는 지난 8월 말 존슨 총리가 새 정부의 입법 계획 등을 위해 하원을 5주간 정회시킬 것을 여왕에게 요청해 재가를 받은 것이 위법이라는 내용의 소송을 또다시 제기했다. 런던고등법원에선 그의 사법 심리 요청이 기각됐지만 대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메이 총리에 이어 바통을 이어받은 존슨 총리는 ‘의회 정회’라는 변칙을 도입했다가 회복 불가능한 정치적 위기에 몰리게 됐다.

밀러는 대법원 판결 직후 지지자들에게 “이번 소송은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것”이라면서 “의원들은 의회로 돌아가서 용감하고 대담하게 부도덕한 존슨 내각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10일부터 정회 상태였던 영국 의회는 25일 상·하원 모두 다시 열리게 됐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