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여자 아이 A의 엄마는 “아이가 너무 주눅 들어 있어요. 친구 사이에서도 자기 주장을 전혀 못해요” “맨날 아이들에게 당하기만 하고, 유치원에서 놀 때도 장난감을 뺏기기만 해요” “그런데 유치원 선생님은 친구들과 잘 지낸다고만 하니 너무 답답해요” 라고 말했다.
하지만 엄마의 말과는 달리, 아이는 진료실에서 이야기할 때는 적절한 목소리 톤으로 눈맞춤도 잘하고 자신감있게 행동하고 놀이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말하니 A의 엄마는 어른들과는 그렇지만 또래 관계에서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평가를 위해 동년배 아이들과 하는 사회기술 훈련 프로그램에 들어가서 관찰해 보았다는데도 적절히 주장하고 적당하게 양보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다시 “여기 아이들이 착해서 그런 거지요 센 아이들에게는 당하기만 한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증거나 새로운 정보들이 나오더라도 그것들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을 말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현상이다. 정보의 객관성과는 상관없다. A의 엄마도 확증 편향에 빠져 있었다. 아이가 장난감을 다른 아이에게 빼앗겼던 것을 본 이후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아이의 모습 중에 ‘자신 없고, 주눅 든 모습’만 보이는 것이다.
A의 엄마는 왜 그런 확증 편향에 빠졌을까? 엄마에게는 어린 시절 트라우마가 있었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맞벌이여서 너무 바쁘신 나머지 돌봄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자존감이 낮았던 A는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았다. 외로웠던 그녀는 친구들이 자기를 떠날까봐 노심초사했고, 상대에게만 맞춰주려고 하였다. 이런 엄마를 친구들은 부담스러워하고 엄마는 언젠가 친했던 친구들에게 차례로 따돌림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이런 트라우마로 인해 항상 남에게 만만하게 보일까 불안했다. 딸에게도 자신의 불안이 투사되었다. ‘아이가 늘 친구들에게 당한다’고 확신하고 그에 맞는 정보만을 받아 들였다. 자신의 확신에 대치되는 정보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게 아이를 편견을 갖고 바라보니 걱정할 일만 늘어나고 잔소리와 지적이 늘었다. ‘왜 친구가 장남감을 달라고 했을 때 ‘싫어’하고 소리치지 못했니?” 라며 나무라고, 때로는 “바보, 맹추같이 왜 그렇게 해”라고 화를 못 참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엄마의 이런 행동이 지속된다면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 눈치보고 주눅 들고 자신감이 떨어진 아이가 되어 갈 수도 있다.
확신 편향이라는 덫에는 누구나 걸려들 위험이 있다. 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한 어떤 연구에 의하면 유전적인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흑인이 백인보다 조현병과 같은 심각한 질병으로 오진되는 경향이 많다’고 한다. 흑인이라면 좀 더 나쁜 환경에서 양육되어졌고 심각한 질병에 걸릴 가능성도 높다는 선입견이 작용하여 부정적인 자료를 수집하게 되어 오진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믿음과 다른 정보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 보자. 그리고 너무 단정적이고 확신에 찬 주장에 대해선 경계도 필요하고 근거를 따져 보자.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상황에선 특히 그렇다. 한 가지 이슈로 인해 양극단으로 분열된 현재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기도하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