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용의자, 6차 사건 이후 ‘유력 범인’ 지목됐지만 풀려나

입력 2019-09-25 14:14 수정 2019-09-25 14:25
사진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씨(오른쪽)가 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인한 협의로 검거돼 옷을 뒤집어쓴 채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모습. 중부매일 제공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이모(56)씨가 당시에도 범인으로 지목됐지만 과학 기술의 한계로 풀려난 것으로 밝혀졌다.

25일 경찰 등에 따르면 당시 경찰이 이씨를 화성사건 용의자로 추정한 시기는 6차 사건이 발생한 이후다. 6차 사건은 1987년 5월9일 오후 3시 경기도 화성 태안읍 진안리의 한 야산에서 주부 박모(당시 29세)씨가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 발생 이후 경찰은 탐문, 행적 조사 등을 통해 이씨가 용의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그를 불러 조사했다. 경찰은 이씨에 대해 입수한 주민 진술 등 첩보를 통해 그가 의심된다고 보고 지휘부에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이 있다”고 보고까지 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이씨는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다. 당시 과학수사 기술로는 6차 사건 현장에서 확보한 체액 등 증거물이 이씨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6차 사건 이전에 확보한 증거물을 통해 추정한 용의자의 혈액형과 이씨의 혈액형도 달랐고 족적(발자국)또한 달랐다.

당시는 증거물에서 DNA를 검출해 분석하는 기술이 도입되기 전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 기술을 수사에 처음 도입한 시기는 1991년 8월로 마지막 10차 사건이 발생하고도 4개월이 지난 뒤였다.

따라서 이전까지는 혈흔을 분석해 혈액형을 파악하는 정도의 기술을 수사에 활용했다. 당시 경찰은 이 방법을 통해 용의자의 혈액형을 B형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이씨는 O형이다.

다만 이씨의 범죄행각은 경찰 조사 뒤 한동안 잦아들었다. 1차 사건부터 6차 사건까지는 짧게는 이틀, 길게는 4개월의 짧은 시간을 두고 범행이 이뤄졌다. 하지만 7차 사건은 6차 사건 이후 1년 4개월 만에 발생했다. 이씨가 자신을 향한 수사망이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범행에 나선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8차 사건과 10차 사건이 일어난 뒤에도 두 차례 더 이씨를 불러 조사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이씨는 10차 사건 이후 2년 9개월이 지난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검거됐다.

이씨가 당시에도 유력한 용의자였으나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하승균(73) 전 총경 등 전현직 경찰관들은 대부분 이씨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수사대상자가 워낙 많았고 이 가운데 용의자로 의심받은 사람도 이씨 한 사람이 아니어서 이를 일일이 기억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언론에 알려진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 외에 이씨를 기억하거나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한 사람들을 찾았다”고 말했다.

이어 “부족한 과학수사 기술에도 이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 것은 성과지만 동시에 거기서 그칠 수밖에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 경찰 입장에서 아쉽고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