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명왕성, 그 파란만장한 역사에 대하여

입력 2019-09-25 13:54

신해경, 루시드폴, 참깨와 솜사탕, 좋아서 하는 밴드…. 이들 뮤지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이들이 각각 ‘명왕성’이라는 제목의 곡을 발표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저마다 다른 색깔을 띤 음악이었지만, 이들 뮤지션이 발표한 노래엔 하나같이 가닿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진하게 녹아 있다. 가령 신해경의 ‘명왕성’ 후렴구에는 이런 노랫말이 등장한다. “나를 떠난 그대가 보여/ 내가 보낸 그대가 보여….”

명왕성이 이렇듯 이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건 2006년 국제천문연맹(IAU)이 내린 결정 탓이다. IAU는 그해 8월 24일 투표를 통해 명왕성의 행성 자격을 박탈했다. 이유는 명왕성의 존재감이 여타 태양계 행성에 비해 보잘 것 없다는 것. IAU의 발표 이후 지구촌 곳곳에서는 사랑이 끝나고서야 사랑을 실감했다는 듯 한바탕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세계의 ‘명왕성 마니아’들은 명왕성을 이대로 떠나보내선 안 된다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명왕성 연대기’에는 인류가 명왕성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과 이 별의 흥망성쇠, 그리고 명왕성의 등장이 바꿔놓은 천문학의 세계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명왕성은 영어로 망자들의 신을 일컫는 ‘플루토(Pluto)’라고 불리는데, 책을 읽으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시작으로 인류 역사에서 명왕성이 차지한 독특한 위치들을 하나씩 짚어나간다.

'명왕성 연대기'를 펴낸 닐 디그래스 타이슨. AP뉴시스


무엇보다 이 책이 눈길을 끄는 건 저자의 명성이 대단해서다. 닐 디그래스 타이슨(사진)은 칼 세이건의 후계자라는 평가를 받는 스타 과학자다. 무엇보다 그는 ‘명왕성 퇴출 논쟁’이 벌어질 때 그 중심에 있었다. 논쟁은 2001년 미국 뉴욕의 한 천체 투영관 태양계 행성 전시물에 명왕성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됐는데, 당시 저자는 이 천체 투영관의 관장이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복기하면서 “무거운 심정으로 명왕성의 강등에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적어두었다.

명왕성을 둘러싼 갖가지 문화사적 사건들을 일별할 수 있는 이색적인 과학 교양서다. 이 책의 부제처럼 ‘명왕성 연대기’를 마주하는 독자들은 ‘우리가 사랑한 작은 행성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