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플라시도 도밍고(78)가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MET) 무대에서도 쫓겨났다.
MET는 24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도밍고가 지금부터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무대에 서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피터 겔브 MET 총감독은 도밍고의 공연을 취소하라는 압박에도 로스앤젤레스(LA) 오페라와 미국 오페라노조(AGMA)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며 버티다가 결국 물러서게 됐다. 25일부터 공연될 예정이었던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스’의 주인공은 도밍고가 아닌 바리톤 가수 젤리코 루치치로 교체된다.
도밍고도 성명을 통해 “내가 이번 공연에 출연하면 함께 고생한 동료들의 노고가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해 철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성추행 의혹에 대해 여전히 부인하면서 “정당한 절차 없이 사람들이 비난받는 사회적 분위기에 우려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겔브 총감독이 마음을 바꾼 것은 지난 20일 ‘맥베스’에 출연중인 단원들에 대한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NPR의 보도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단원들은 NPR에 “MET 단원들 누구나 도밍고가 여자 쫓아다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AP통신이 보도했던 도밍고의 성추행 의혹은 오페라계에선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고 밝혔다.
MET 단원들 중에서 도밍고의 성추행을 고발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단원들은 NPR에 “MET에서 일하는 여성들은 도밍고와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서 “도밍고의 성추행과 관련한 일들이 1980년대에 많이 일어났다. 그가 나이들면서 그런 문제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여성들은 안다”고 말했다.
단원들은 또 2018년 MET의 음악감독이었던 제임스 레바인이 젊은 남성 7명에 대한 성추행 등 성폭력 혐의로 쫓겨났던 문제를 상기시켰다. “수십년간 MET를 이끈 레바인에 대해 성추행 관련 소문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했다. 우리는 거의 40년간 참았다. 마침내 의혹이 확실히 드러나자 경영진이 비로소 그를 제거했다”면서 “레바인이 쫓겨난 뒤 우리는 이제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밍고 출연을 강행하는 경영진의 조치를 보면) 어떤 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오페라계의 문화는 너무나 뿌리깊다”고 자조했다.
NPR의 보도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겔브 총감독은 이사회와 논의해 도밍고 출연 철회를 결정했다. 이사회는 그동안 도밍고의 출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MET의 이번 결정은 세계 오페라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MET가 자타공인 세계를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MET는 도밍고를 스타로 만들어준 곳이기도 하다. 도밍고는 1959년 멕시코 국립 오페라에 입단하면서 프로 성악가로 데뷔했다. 이후 크고작은 역을 맡으며 성장한 그는 1968년 9월 MET에서 테너 프랑코 코렐리의 대역으로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에 출연하면서 각광받았다. MET에서의 센세이셔널한 성공 이후 그는 세계 오페라 하우스와 특급 페스티벌의 단골 주역으로 군림하게 됐다. 도밍고는 MET에 거의 매 시즌 출연해 지금까지 53개 배역, 706회 공연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다. 올해에도 지난 4월 ‘라트라비아타’ 공연과 함께 MET 데뷔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열었으며, 9월 ‘맥베스’와 11월 ‘나비부인’에 출연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MET의 이번 결정으로 도밍고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