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2·3차 사건 사이에 같은 피해를 입을 뻔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성 A씨(56)가 당시 기억을 24일 조선일보에 털어놨다. A씨는 극적으로 탈출했었다며 “아직도 그때가 생생히 떠올라 몸서리친다”고 말했다.
A씨에 따르면 그는 1986년 11월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한 성당 인근의 지인 집을 방문했다가 귀가하던 길에 괴한을 만났다. 지인 집에서 김장을 도운 뒤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왔던 터라 시간은 오후 8시30분쯤이었다. 10분 남짓 거리의 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남성이 돌연 A씨를 덮쳤다. 가로등이 없어 사방이 어두웠기 때문에 남성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고 한다.
남성은 “꼼짝 마”라며 A씨를 붙잡은 뒤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A씨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렸다. 남성은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A씨를 끌고 논밭으로 들어갔다. A씨는 “맞으면서 ‘동네 살인마가 이 남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A씨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주변에 있던 소똥 위로 굴렀다고 했다. 논밭 주변에 소를 키우는 목장이 있어서인지 소똥이 가득했다. A씨는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똥밭을 나뒹굴었다. 냄새 때문인지 (남성이) 포기하고 가버렸다”면서 당시 앞니 2개가 부러지고 윗입술이 터져 5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A씨는 다음 날 경찰에 신고해 조사를 받았다. 경찰이 집에 여러 번 찾아오기도 했다. 경찰이 “연쇄 살인마와 괴한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는 괴한의 인상착의에 대해 “키는 나보다 조금 컸고 몸은 왜소했다”면서 “목소리는 중저음이었다”고 기억했다. 과거 화성 7차 사건 후 버스에 탄 용의자를 본 안내양은 용의자에 대해 “키 168㎝ 정도였고 몸은 호리호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A씨는 화성 2차(1986년 10월 20일)와 3차(1986년 12월 12일) 사건 사이인 1986년 11월 19일 괴한을 만났다. 그리고 A씨 사건 직후인 1986년 11월 30일, 당시 45세이던 B씨도 낯선 남성에게 납치돼 인근 논둑으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 남성은 B씨의 양말로 두 손을 묶고 속옷을 씌운 채 범행을 저질렀다. B씨도 가까스로 탈출한 뒤 “범인은 25~27세 정도에 키 160~170㎝가량의 호리호리한 몸매, 저음의 목소리 소유자”라고 진술했었다.
경찰은 ‘처제 성폭행·살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20년 넘게 복역 중인 이모(56)씨를 화성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유전자 감식 결과 화성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사건의 증거품에서 나온 DNA와 이씨의 것이 일치했다. 그러나 이씨는 4차례 이어진 대면 조사에서 “나는 화성 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