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선 13개월 앞두고 ‘트럼프 탄핵 전쟁’ 시작됐다

입력 2019-09-25 08:47 수정 2019-09-25 12:45
미국 정치권에 ‘트럼프 탄핵 전쟁’이 시작됐다. 민주당은 이른바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녀사냥 쓰레기”라고 반발했다.

탄핵 절차 개시를 발표한 낸시 펠로시(왼쪽) 하원의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내년 11월 3일 미국 대선을 13개월 여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의 탄핵 절차 개시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미국 정치권을 덮쳤다.

민주당과 트럼프 대통령 측은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감 속에 ‘사생결단 혈투’를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의 선제공격에 트럼프 지지층은 반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면서 미국의 여론은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파’로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분석된다.

탄핵 여부의 성패는 내년 대선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헌법 위반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권좌에서 물러나거나 정치적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없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결백을 강조하면서 역공을 가할 것이 확실시된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조사 과정에서 민주당 유력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위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탄핵 추진이 민주당에게 ‘양날의 칼’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24일(현지시간) 의회에가 기자회견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 차원의 탄핵 절차 돌입을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그동안 탄핵 반대파였던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날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뒷조사를 요구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침해했으며 미국 헌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펠로시 의장은 “그리하여, 오늘 나는 하원이 탄핵 여부에 대한 공식 조사에 착수한다는 사실을 알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아무도 법 위에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취임 선서에 대한 배반, 국가 안보에 대한 배반, 선거의 고결성에 대한 배반을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펠로시 의장이 며칠 동안 참모·동료들과 논의했으며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서 탄핵 찬성 여론이 높아지자 탄핵 착수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보도했다. 하원의 6개 상임위가 조사를 진행하며 법사위가 이를 관장할 예정이다.

민주당 대선 경선의 ‘3강’인 바이든 전 부통령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탄핵 추진에 지지 입장을 밝혔다. 당사자인 바이든 전 부통령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의회는 탄핵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조건부 찬성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한 날, 탄핵 추진 대상이 되는 불명예를 겪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유엔에 있는 이처럼 중요한 날에,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성공이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은 마녀사냥 쓰레기 속보로 이를 망치고 손상시켜야 했다”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매우 나쁘다”고 비난했다.

또 민주당 소속의 펠로시 의장, 제리 내들러 법사위원장, 애덤 시프 정보위원장, 맥신 워터스 금융위원장을 일일이 거명한 뒤 “그들은 결코 그 통화 녹취록을 보지조차 못했다”면서 “완전한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 대통령과 정상회담 중에 기자들을 향해 “펠로시가 그렇게 한다면 선거(내년 대선)에서 나에게 긍정적”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탄핵 절차가 추진됐던 역대 미국 대통령은 앤드루 존슨·리처드 닉슨·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3명이다. 탄핵 표결이 진행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네 번째로 탄핵 심판대에 오르는 미국 대통령이 된다. 존슨과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모두 부결됐다. 닉슨 전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자 스스로 사퇴했다. 미국은 1998년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 이후 21년 만에 또다시 탄핵 정국에 휩싸이게 됐다.

미국의 현직 대통령 탄핵 절차는 하원의 탄핵 조사를 거쳐 탄핵소추안이 제출돼 하원에서 과반 찬성으로 통과되면 상원에서 탄핵 재판이 진행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원에서 심리를 거쳐 3분의 2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대통령은 탄핵을 당한다. 이후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넘겨받는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상원은 공화당이 각각 장악하고 있어 탄핵안이 하원을 통과하더라도 상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불길처럼 번지면 상원도 트럼프 대통령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또 탄핵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벼랑까지 몰아가겠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우크라니아 스캔들이 터진 이후 민주당에게 탄핵 추진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너무 높아 탄핵 추진을 안할 수 없는 처지였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파문이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문제의 통화 녹취록을 25일 공개하기로 했다. 녹취록 공개가 탄핵 대전의 첫 전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트럼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은 줄어들고 있는 나타났다. 로이터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이날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트럼프 탄핵’에 찬성한 비율은 37%였다. 이달 초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41%가 탄핵에 찬성했고, 지난 5월엔 탄핵 찬성 여론이 44%에 이르기도 했다.

이번 조사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인 지난 23일부터 이틀 동안 실시됐다. 하지만 응답자의 52%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확산되면 여론이 변화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