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유벤투스 공격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포르투갈)가 더 베스트 국제축구연맹(FIFA) 풋볼 어워즈 2019에 불참한 뒤 무심한 표정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노쇼 뒤 쿨병’은 이제 호날두의 SNS 법칙이 됐다.
호날두는 24일(한국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의 시상식장에 참석하지 않았다. 올해의 남자 선수 최종 후보는 물론, FIFA·국제축구선수협회(FIFPro)에서 공동으로 선정된 월드베스트 11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지만, 이번 행보도 ‘노쇼’였다. 올해의 남자 선수상은 스페인 FC바르셀로나 공격수 리오넬 메시(32·아르헨티나)의 몫이 됐다.
호날두의 불참 사유는 허벅지 안쪽 근육 이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올해의 남자 선수 최종 후보 3명 중 유일하게 이탈리아에서 거주하고, 소속팀 유벤투스의 연고지 토리노에서 150㎞가량 떨어진 밀라노로 찾아가지 않은 호날두의 노쇼는 ‘남의 잔치를 외면했다’는 의견에 무게를 싣는다.
호날두의 무관은 어느 정도 예상이 된 일이었다. 호날두는 유벤투스로 이적한 지난 시즌 43경기에서 28골 10어시스트로 부진했다. 최종 후보로 경쟁한 메시는 같은 시즌 50경기에서 51골 22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버질 반 다이크(28·네덜란드)는 소속팀인 잉글랜드 리버풀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호날두는 시상식을 끝낸 뒤 세상일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독서하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의미심장한 글도 적었다. “확실한 인내와 끈기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두 가지 특성이다. 오늘날의 큰 일은 모두 작은 일에서 시작됐다. 밤이 지나야 새벽이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SNS상에서 ‘쿨병’으로 설명되는 분위기의 글과 사진이다. 쿨병은 현안이나 인간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연연하는 행동을 비웃는 인터넷 조어다. 스페인 일간 마르카는 “호날두가 시상식 뒤에 철학적으로 변했다”고 비꼬았다.
호날두의 ‘노쇼 뒤 쿨병’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한국 축구팬들도 경험했다. 호날두는 지난 7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팀 K리그와 가진 친선경기에 ‘최소 45분 출전’ 약속을 깨고 결장했다. 유벤투스의 지각으로 경기가 57분이나 지연된 경기였다. 같은 날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던 팬미팅도 일방적으로 불참했다.
당시 호날두의 노쇼 사유는 완전하지 못한 몸 상태였다. 하지만 같은 달 27일 인스타그램에서 24시간 동안 노출되는 스토리 기능을 활용해 가벼운 몸놀림으로 러닝머신을 뛰는 영상을 올렸다. 이 영상에 “집에 돌아와 좋다”는 자막을 썼다. 한국 팬들에 대한 사과는 없었다.
부정적인 여론에 휘말릴 때마다 건재한 모습을 SNS에 노출하지만, 결국 이런 행동은 누구보다 따가운 눈총을 의식하는 불안감의 역설로 설명될 수밖에 없다. 철저한 자기 관리로 ‘축구 기계’라는 별명까지 얻은 호날두의 가장 나약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팬 1억8400만명과 연결된 인스타그램에서 표출되고 있는 셈이다.
호날두는 더 베스트 국제축구연맹(FIFA) 풋볼 어워즈 2019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3표 중 어느 한 표도 메시에게 행사하지 않았다. 유벤투스 동료 수비수 마테이스 데 리흐트를 1순위로 지목했고, 프렝키 데 용(바르셀로나), 킬리안 음바페(파리 생제르맹) 순으로 기표했다. 메시는 호날두를 외면하지 않았다. 1순위로 사디오 마네(리버풀), 2순위로 호날두, 3순위로 데 용을 선택했다.
메시는 각국 대표팀 감독과 주장, 언론인, 팬들의 투표에서 46점으로 최고점을 얻어 개인 통산 6번째 올해의 남자 선수상을 받았다. 반 다이크는 38점, 호날두는 36점으로 뒤를 이었다. 메시는 이번 수상으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이 상을 5회씩 양분했던 호날두와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게 됐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