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제 산모’ 낙태 의사, 다른 병원서 진료…의협 조사 착수

입력 2019-09-25 05:30 수정 2019-09-25 05:30

영양제 주사를 맞으러 온 산모에게 실수로 낙태 수술을 진행한 의사가 다른 대학병원에서 버젓이 진료 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의사 면허 관리 문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지난달 7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베트남 여성의 동의 없이 낙태 수술을 한 의사 A씨와 간호사 B씨를 업무상 과실치상 혐의로 수사 중이다. A씨와 B씨는 영양제 주사를 처방받기로 돼있던 임신 6주 여성을 계류유산(죽은 태아가 자궁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 환자로 착각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25일 “두 사람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A의사가 사고 발생 직후 다른 대학병원으로 옮겨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온라인 산모 커뮤니티 등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가득하다.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의사가 버젓이 진료를 해도 되나’ ‘내가 가는 병원에 A의사가 있을까 두렵다’ 등 반응이다.

A의사가 면허 정지나 취소 등의 처분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직장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은 행정처분이 대법원 판결 뒤에야 이뤄지기 때문이다. 의료인의 면허 정지·취소 등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데 정부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뒤 조치를 한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행정 공무원들은 의료 관련 전문 지식이 의사들에 비해 부족하다보니 대법원 판결을 본 후에야 행정처분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이는 안전 문제를 걱정하는 환자들의 눈높이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진국 대부분에선 의사협회에서 면허를 관리해 논란이 되는 사건이 생기면 우선 자격증을 정지한 후 판결을 보고 조치를 확정한다”고 덧붙였다.


더욱이 과실치상 혐의를 받는 A의사는 죄가 확정돼도 계속 의사로 활동할 수 있다. 관련 법상 면허 취소 요건이 업무상 비밀누설, 허위 진단서 작성,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한정돼서다.

다만 A의사가 면허자격 정지 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더 들여다 볼 여지가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관련법상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 1년 범위에서 면허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며 “판결 확정 이후 이 사건이 해당 조항에 해당하는지 살펴봐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이번 낙태 사고에 대해 진상조사에 나섰다. 대법원 판결 확정 이전에도 환자 안전 관리 관련 A의사, B간호사의 책임이 명확해지면 중앙윤리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다. 다만 의사협회 차원의 징계는 최대 3년 이하의 협회회원 자격 정지 및 5000만원 이하 위반금 부과 등에 그쳐 실효성이 낮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