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끝나리라. 마지막 병사가 집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우리는 전진한다.”(‘귀환’의 넘버 ‘기다림’ 中)
또 한 편의 웰메이드 육군 창작 뮤지컬이 탄생했다. 인기 아이돌 멤버들이 총출동한 뮤지컬 ‘귀환-그날의 약속’(이하 ‘귀환’)이다. 지창욱 강하늘을 앞세워 11만 관객을 동원한 전작 ‘신흥무관학교’의 흥행을 이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오는 10월 22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공연되는 ‘귀환’은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미처 수습되지 못한 채 아직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호국영사들의 유해를 찾아 조국의 품으로 모시는 이야기를 다룬다.
육군본부 주최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이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사회’에서도 성사되기 어려운 초호화 캐스팅 덕분이다. 동시기에 입대한 엑소 샤이니 빅스 인피니트 워너원 등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이 대거 출연한다. 웬만한 K팝 공연 못지않은 라인업인데, 반응은 벌써부터 뜨겁다. 1차 티켓이 오픈 직후 전석 매진됐다.
전쟁의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청년 승호 역은 온유(본명 이진기·샤이니) 시우민(김민석·엑소), 동료들 사이에서 경외의 대상인 해일 역은 이재균 엔(차학연·빅스)이 맡았다. 승호의 가장 친한 친구인 진구 역은 김민석 이성열(인피니트)이 소화한다.
살아남은 친구들의 유해를 찾아 평생을 헤매는 현재의 노년 승호 역에는 이정열과 김순택이, 승호의 손자 현민 역에는 조권(2AM)과 고은성이, 유해발굴단으로 현민을 이끄는 우주 역에 김성규(인피니트)과 윤지성(워너원)이 각각 합류했다.
육군본부 정훈공보실장 박미애 준장은 24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6·25 전쟁 이후 수습되지 못한 전사자 유해는 13만3000여명에 달한다.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드리는 게 군의 소명이기 때문에 ‘전사자 유해 발굴’을 소재를 정했다”면서 “뮤지컬을 통해 위국헌신의 정신을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작품에 참여한 연예인 출신 병사들 중에는 뮤지컬이 처음인 이들도 몇 있다. 시우민은 “군 생활에 집중하고 내가 사회에서 했던 일은 내려놓자는 생각으로 입대했는데 훈련소에서 7주차가 되지 공연이 너무 하고 싶더라. 무대에 대한 갈증이 커졌던 차에 때마침 좋은 기회가 생겨서 감사한 마음으로 오디션에 참여했다. 발성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발전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역시 뮤지컬에 첫 도전한 배우 김민석은 “늘 카메라 앞에서 하는 연기만 했던 터라 무대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여 동경한 적이 있다. 실수 없이 뮤지컬에 누가 되지 않도록 제 역할을 톡톡히 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이성열은 “의미 있는 작품에 저도 꼭 한번 참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휴가 나왔을 때 안무가 선생님과 연습을 열심히 해서 오디션에 합격했다”고 밝혔다.
입대 직전까지 ‘그날들’에 참여했던 윤지성은 “‘그날들’ 이후로 두 번째 작품인데 매 공연마다 뜻 깊고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이번 작품은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작품이 모두가 잊어선 안 되는 일을 상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기쁘다. 스스로도 책임감을 느끼며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무대 경험이 풍부한 뮤지컬 배우들도 함께한다. 이재균은 “하루종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이제는 동료들과 한몸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모두가 한 마음이 돼서 작품을 해보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라 즐겁게 연습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고은성은 “뮤지컬 배우이기 때문에 더 잘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다들 너무 잘하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배우들은 실제로 남궁선 중사 유해 안장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온유는 “안장식에 참석했던 소감이나 감상을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한시라도 빨리 전사자들의 유해가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있어 더욱더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해서 극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속 깊이 다짐했다”고 얘기했다.
조권도 “저희 배우들 중에는 실제로 유해 발굴 현장에 가본 병사는 없는데, 제가 군악대로 복무하고 있는 자대에 유해발굴단이 있다. 그들이 작업하러 오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엄숙함과 책임감이 느껴지더라. 군악대로 복무하면 안장식이나 장례식 때 의식곡을 연주하는데 그때마다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에 대한 감사함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예인 출신 병사들이 일반 훈련을 받지 않고 공연에 참여한다는 점에 대해 일각에서는 연예병사 제도의 부활이 아니냐는 비판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육군본부의 심성율 대령은 “특정 연예인 출신 병사들을 개별적으로 섭외해 뮤지컬을 제작한 게 아니다. 문화 콘텐츠를 통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육해공 말단 부대까지 공문을 내려 보내 오디션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물론 각자의 부대에서 소총병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서 활동했던 재능을 살려 군과 국민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전방에서 근무하는 병사들 못지않게 밤늦게까지 연습하며 고생한다. 뮤지컬을 한다고 해서 편하게 군 생활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아주셨으면 한다”고 선을 그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