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창씨개명한 한국인 명의의 부동산이라도 해방 후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가에 귀속됐다면 그 소유권은 국가에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박모(67)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유권말소등기 등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박씨는 1996년 국유화된 토지에 대해 “일제강점기 시절 부친이 취득한 개인 땅”이라고 주장하며 국가가 가진 소유권이전등기를 말소해야 한다고 소송을 냈다. 박씨의 부친은 1944년부터 일본 이름으로 추정되는 A씨 명의의 땅에서 집을 짓고 거주해왔다. 박씨는 2012년 부친이 사망할 무렵 집을 증여받았다.
해방 후 정부는 A씨 명의로 된 토지가 국가 소유라고 판단하고 1996년 이 땅에 대해 ‘무주(無主) 부동산’(주인이 없는 부동산) 공고절차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박씨 측에 ‘사유재산임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를 갖춰 이의신청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6개월간 답변을 받지 못하자 이 땅을 국가에 귀속시켰다.
1심은 “A씨 명의 소유권이전등기 당시는 창씨개명이 일반화되던 시기”라며 “A씨도 창씨개명한 한국인으로 추정할 수 있고 그 이전의 토지 소유자들도 모두 한국인이었던 점 등을 비춰 보면 해당 토지가 대한민국에 귀속된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A씨가 일본인이었다면 토지를 국가에 귀속할 수 있지만, 한국인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귀속재산으로 볼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 2심은 “국가가 이의신청하라는 공문을 발송했으나 박씨 아버지가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고, A씨를 한국인이라 단정하기 어렵다”며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해당 토지가 창씨개명한 한국인 소유라고 추정되긴 하지만 국가가 ‘무과실 점유’로 부동산을 취득했다고 보고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해방 직전 부동산을 취득한 A씨는 창씨개명한 한국인으로 추정되므로, 일본인 소유 귀속재산이라고 판단하기 위해선 국가가 A씨가 일본인이라는 반증을 들어야 한다”며 “귀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다만 “국가는 소유자 존재 및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 뒤 해당 부동산을 점유하기 시작했다”며 “귀속재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고 과실 없이 점유를 개시했고, 10년이 지나 등기부취득시효가 완성됐다”면서 국가 소유가 맞다고 판단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