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한 용의자 이모(56)씨의 모친이 30여년전 그려진 이 사건 범인의 몽타주를 보고 “우리 큰 애와 많이 닮았다”고 말했다.
이씨가 대면 조사 3번 동안 모든 혐의를 부인한 가운데, 그의 모친이 “몽타주 속 남성은 아들과 비슷하다”면서도 “예전 사건을 이제와 끄집어내는 것은 너무 잔인한 것 같다.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토로했다고 한국일보가 24일 보도했다. 모친은 아들의 범죄 혐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도 “사실이라면 벌을 받아야한다”고 했다.
모친은 “얼마 전 갑자기 기자들이 찾아와 아들이 범인으로 지목됐는데 아느냐고 물어서 깜짝 놀랐다”며 “부모를 먼저 배려하는 착한 아들이었기에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착한 아들, 순한 아이라 그런 일을 벌일 아이가 아니다”며 “정말 그랬다면 내가 낌새를 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몽타주를 이날 처음 본 것으로 전해졌다. 모친은 “몽타주가 만들어진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며 “만약 누군가 이걸 봤다면 우리 집으로 달려와 따지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이 몽타주는 1988년 그려져 전국에 배포됐다. 경찰은 그 해 9월 7일 50대 여성이 숨졌던 7번째 범행 이후 목격자를 확보했다. 버스 기사와 안내양이었다. 이들은 시외버스에 탄 20대 남성이 어딘가 수상했다는 진술을 내놨다. 그는 사건 장소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지점에서 버스에 올랐는데 신발과 무릎 아랫부분은 젖어있었다. 짧은 머리에 키는 168cm 정도였다. 눈매는 날카로웠고 코는 오똑했다. 목격자들은 몽타주 작업을 도왔다.
모친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당시 상황을 알고 있었다. 당시 떠들썩하던 마을 분위기를 꽤 선명히 기억했다. 하지만 당시 자신과는 동떨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경찰이 자신이 살던 곳 인근을 샅샅이 뒤졌지만 정작 자신의 집은 찾아온 적 없다고도 했다. 그는 “동네 경찰들이 마을에 쫙 깔리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고 아주 그냥 살다시피 했었다”며 “하지만 전단을 들고 우리 집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때 나는 물론이고 이웃들 역시 ‘설마 우리 마을에 범인이 있을까’ 하는 상상조차 못했었다”고 전했다.
감정이 고조돼 흥분하기도 했다. 그는 “나도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고 동네 사람들 볼 낯이 없다”면서도 “처제 사건이라면 몰라도 지금에서야 왜 끄집어 내느냐. 지금 세월이 몇 년이 지났는데 지금에 와서 얘기하는 건 너무 잔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안하지만 그것보다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믿는다”면서도 “(만약 사실이라면) 법대로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라고 전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지난 18일부터 부산교도소에 프로파일러 등을 전문 수사진을 파견해 3차례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가 범행을 전면 부인하는 상황에서 그를 압박할 수 있는 유의미한 단서를 확보하기 위해 수사자료 검토에 집중하고 있다. 또 그와 마주쳤던 적 있는 목격자인 버스 안내양을 찾고 있다. 버스 기사는 지병으로 숨졌다.
경찰은 여죄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10차 사건 피해자가 발견된 1991년 4월부터 이씨가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검거된 1994년 1월까지 경기 화성과 충북 청주 일대에서 실종되거나 살해된 채 발견된 여성이 있는지 다시 살펴보고 있다.
이씨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이후인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현재까지 조사에서 “화성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자백을 얻기 위해 그의 모친 등 가족을 적절한 시점에 동원할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들과 남동생은 종종 면회를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