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DNA를 근거로 이모(56)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지만 혈액형을 둘러싼 논란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1990년 11월 9차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당시 유일한 증거물은 체액이었고 분석 결과 혈액형은 B형이었다’며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9차 사건 당시 혈액형 검사를 주도한 최상규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분석과장은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당시에는 증거물이 정액 밖에 없었다”며 “여기서 파악된 혈액형은 분명하게 B형이었고 수차례 확인한 뒤 경찰에 통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9차 사건 이전에는 혈액형 검사 결과가 불확실하면 모두 ‘판정 불능’으로 통보했다”며 “B형으로 확정해 통보한 건 그만큼 확실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최 전 과장은 1991년 4월 10차 사건 발생 후 9·10차 증거물에서 채취한 체액을 일본 경찰수사과학연구소에 직접 분석 의뢰했던 인물이다.
현재 화성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지난 7월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증거물 중에는 9차 사건 피해자 김모(13)양 속옷에서 검출된 땀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땀에서 채취한 DNA를 분석했더니 이씨의 DNA와 일치했고, DNA상 혈액형은 O형이 맞다는 것이다. 1994년 1월 이씨의 처제 강간·살인·사체유기 사건의 항소심 판결문에 그의 혈액형은 O형으로 나와 있다.
경찰 관계자는 “DNA 결과가 나온 이상 혈액형 논란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30년 전 수사와 지금 수사는 과학적으로 비교가 안 된다”고 일축했다. 이어 “나머지 증거물에 대한 국과수 감정이 다 끝나면 여러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이씨가 당시 조사를 받고도 풀려난 이유가 용의자 혈액형이 B형으로 특정됐기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확인 중”이라며 “어느 시점에서는 규명돼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DNA 일치 판정이 나왔지만 실제 피의자가 맞느냐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확인하고 있다”며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고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