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미국산 옥수수 사료를 대량 수입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놓고 불리한 미·일 무역협정과 맞물려 일본에서 논란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600억엔(약 6700억원)에 달하는 275만톤을 구입 방침을 밝혔지만 막상 민간 사료 회사들이 구입 의사가 없는 것으로 드러나 앞으로 옥수수 문제가 미·일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
도쿄신문은 23일 일본 주요 사료 회사를 취재한 결과 미국산 옥수수 사료를 추가 수입하려는 회사는 전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앞서 “모기 유충에 의한 일본 내 사료용 옥수수의 피해가 크다”면서 정부가 아닌 민간이 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사료업계는 “모기 유충에 의한 옥수수의 피해는 미국에서 옥수수를 수입할 만큼 크지 않아서 수입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6일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한 자리에서 미국산 옥수수 275만톤을 추가로 수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이 수입하기로 한 옥수수는 사료용으로 중국이 구매하려 했다가 미일 무역갈등 악화로 인해 사지 않게 된 물량이다. 일본의 경우 이미 사료용 옥수수의 95%를 미국산에 의존해 온 만큼 추가로 수입할 필요가 없다. 일본이 미국에서 수입하는 옥수수 규모는 연간 1100만톤으로 추가 수입하겠다는 275만톤은 연간 물량의 1/4에 해당한다. 올해 옥수수 재고 물량이 6000만톤에 육박하는 미국이 또다시 일본에 압력을 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G7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미국의 옥수수 재고를 전부 살 것”이라고 말했다.
불필요하게 수입한 옥수수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골치거리가 될 전망이다. 일본 언론은 아프리카에 구호물자로 보내거나 아니면 바이오연료로 만들어 활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베 총리가 옥수수 대량 구매를 약속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산 자동차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무역협상에서 일본은 소고기, 돼지고기, 유제품, 와인, 에탄올 등 미국 농산물에 대한 관세를 낮추는 대신 미국은 자동차를 제외한 일본 산업제품 관세를 인하하기로 했다.
일본은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승용차 관세(2.5%)의 점진적 철폐와 자동차 부품의 80% 이상 품목(주로 2.5%)에 대한 관세의 즉각적인 철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이 얻은 것은 미국산 소고기의 관세율 38.5%를 단계적으로 9%로 낮추는 대신 자동차 관련 관세는 ‘계속 논의한다’는 내용을 협정에 넣는 쪽으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자동차 관세 인하가 조기에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육류 관세만 낮아지면 양국 간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25일 유엔총회 기간중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무역협정에 서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률적인 확인 등의 문제로 이번 회담에서 서명은 보류됐으며, 최종 합의를 서면으로 확인하는 방향으로 조정됐다. 자칫 무역협정 서명식 이후 ‘퍼주기 외교’ 논란이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옥수수 문제에 이어 미·일 무역협정에 대해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이것이 아베 총리가 강조하는 ‘윈윈하는 미·일관계’인가. 일본만 손해볼 뿐”이라고 지적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