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대항하는 차원에서 경제 정책 ‘민부론’을 내놓았지만 당이 그간 견지해왔던 입장을 ‘재탕’하는 데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 간섭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것이 민부론의 핵심인데 이는 역대 보수 정권이 추진해왔던 친(親)시장 친기업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했던 747 공약을 답습한 듯 각종 수치적인 목표치를 제시했고,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했던 ‘경제 민주화’ 정책들은 빠졌다는 점에서 당 내부에서도 퇴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부론(民富論)은 개인과 기업이 잘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졌다. 정부의 개입과 간섭을 줄이는 대신 민간 영역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민간의 재산 ‘민부’가 늘어날 수 있다는 취지다. 이름으로는 경제학 고전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대비되는 정책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손으로 불리는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결이 같다고 볼 수 있다.
민부론의 세부 정책들도 기업과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업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준다는 차원에서 차등의결권과 같은 경영권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배임죄 적용 기준은 강화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규제에 방점이 찍혀있던 공정거래법을 경쟁촉진법으로 바꾸는 안도 제시됐다. 이 외에도 상속세 및 증여세 개혁, 법인세 조정 등 기업, 특히 대기업에 유리한 정책들이 대거 포함됐다. 한국당은 민부론을 통해 203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중산층 비율 70%, 가구소득 1억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했다.
반면 시장의 권한을 늘렸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경제력 집중’, ‘부의 불평등한 분배’와 같은 문제들에는 소홀해졌다. 민부론에 따르면 대기업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됐던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풀고, 대기업집단의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의 규제도 완화해야 한다고 돼 있다. 모두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추진했던 정책으로, 보수당이 파격적으로 끌어안았던 시대 가치를 내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 관계자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어서 1인당 국민소득 5만불로 올리겠다는 말에 어떤 국민들이 공감하겠느냐. 흘러간 고도성장시대의 정책목표스럽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와 차별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동 부문에 대해서도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반복하는 데만 집중했다. 대기업과 공공기관 소속 정규직 노동자들을 과보호해 절대다수인 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해졌다면서, 고용계약법 제정을 통한 근로 형태의 다양화, 해고 법제 완화 등의 정책들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하지만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내놓지 않았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도부에 있었을 때 당이 간판 경제정책으로 선보였던 ‘아이노믹스’는 대기업의 임금 상승률은 억제하고 중소기업의 상승률은 높이는 연대임금제를 대안으로 꼽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23일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노동시장 유연화하자는 황교안 대표의 ‘민부론’은 재벌과 부자들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1%의 ‘민부론’”이라면서 “대다수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99%의 ‘민폐론’”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민부론은) 친기업·반노동 정책으로 가득 차 있고, 경제 위기 원인을 정부 탓으로 돌리고, 노조 비판에 집착하다 보니 민부론은 경제정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념적 선동에 가까운 것 같다”고 평가절하했다.
한국당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민부론과 관련된 비판을 적극 반박했다. 2020 경제대전환위원회 간사인 김종석 한국당 의원은 “부의 불평등보다 더 중요한 것인 빈곤 해소”라며 “경제성장의 과실이 가장 어려운 사람들에게 가자는 개념이 민부론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또 “경제를 민간 주도로 하라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라며 “대기업의 갑질과 부패의 고리뿐만 아니라, 대형노조와 같은 조직화된 노조의 집단 이기주의를 해소하는 것이 소등 불평등을 해소하는 첫 번째 요소”라고 강조했다.
심우삼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