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3일 우리 정부가 “외세의 눈치를 보며 외세의 지령하에 움직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동안 비난을 자제해 온 미국을 향해선 남북관계 문제에서 손을 떼라고 으름장을 놨다.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을 앞두고 대남·대미 비난을 이어가며 직간접적으로 미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대남선전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날 ‘민족 공조만이 유일한 출로’란 제목의 글을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남조선 당국은 겨레와 국제사회 앞에 확약한 북남(남북)관계 문제들에 대해 의무를 이행할 생각은 하지 않고 외세의 눈치를 보며 외세의 지령하에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조선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출로는 사대적 근성과 외세 의존 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 공조의 길로 나가야 한다”고 경고했다.
조만간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전망되자 대남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약한 고리인 남북관계를 흔들어 우회적으로 대미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형적인 ‘남한 흔들기’ 수법이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노딜’과 이후 우리 정부에 대한 비난을 이어오고 있다. 앞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9일 담화문에서 이달 말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실무협상 테이블에 앉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전날에도 노동신문을 통해 한반도 정세 악화의 책임은 우리 정부에 있다고 주장하며 대남 비난전을 벌였다.
23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단 점도 대남 비난을 이어가는 데 영향을 준 것으로 읽힌다. ‘민족 공조’ 등을 앞세워 미국 측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확실히 전달하라는 것이다. 한·미 정상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 등을 논의한다.
북한은 그동안 자제하던 대미 비난도 재개했다. 앞으로의 협상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단 의도다.
대외선전 매체 ‘메아리’는 ‘북남관계를 핵문제에 종속? 참을 수 없는 모독’이란 글에서 “최근 미국이 북남관계 진전이 ‘북핵문제’ 진전과 분리될 수 없다고 또다시 을러메면서(협박하면서) 남조선 당국을 강박하고 있다”며 “강도의 횡포”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대체 미국이 뭐길래 우리 민족의 내부 문제에 한사코 머리를 들이밀려고 하는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의 내정에 간섭할 권리는 그 어느 나라, 그 어느 국제기구에도 주어져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