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된 이모(56)씨가 30여년 전 사건 수사가 한창일 당시 경찰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아직 당시 용의선상에서 이씨가 배제된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23일 이씨가 화성사건 당시 경찰 조사를 받은 기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은 맞다”면서도 “당시 수사관들하고도 얘기해야 하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는 정밀하게 살펴봐야 하는데 수기 등으로 작성된 자료가 15만장에 달하는 등 방대해 현재 살펴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최근 모방범죄로 밝혀져 범인까지 검거된 8차 사건을 제외한 총 9차례의 화성사건 중 5, 7, 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새롭게 검출된 DNA가 이씨의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됐다. 특히 이씨는 화성사건이 발생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에서 태어나 1993년 4월 충북 청주로 이사하기 전까지 그 일대에서 계속 살아 용의자로 지목됐을 가능성이 거론됐다.
하지만 그간 이씨가 용의선상에 올라 조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은 없었다. 이날 경찰이 이씨의 당시 조사 기록이 확인됐다고 밝힌 것이 처음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당시 조사에서 이씨가 왜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이유는 당시 증거물 분석을 통해 경찰이 용의자의 혈액형이 B형일 것이라고 추정하면서 O형인 이씨가 배제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당시 확보된 용의자의 신발 사이즈와 이씨의 사이즈가 달라 용의자로 보지 않았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서는 “신발 사이즈는 당시 탐문 수사 과정에서 참고자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보도 내용을 부인하는 취지로 답변했다.
현재 경찰은 이씨에 대한 추가 대면조사를 진행하지 않고 기존 사건기록 검토와 그동안 이뤄진 대면조사에서 이씨가 한 진술 등을 분석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일까지 3차례 이뤄진 조사에서 “나는 화성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화성사건 용의자의 혈액형과 이씨의 혈액형은 다르지만 DNA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여전히 혈액형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DNA의 오류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것을 들어 이씨가 진범이 맞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편 사건 당시 수사를 진행했던 경찰 등 일부 관계자들이 화성사건 용의자의 몽타주와 이씨의 얼굴이 달랐다고 증언하는 등 엇갈리는 진술도 나오면서 화성사건의 진범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