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英총리 ‘운명의 한주’… 대법원, 의회 정회 위법 여부 판결

입력 2019-09-23 06:47
보리스 존슨 총리가 지난 16일 룩셈부르크에서 그자비에 베텔 총리와 회동 후 걸어가고 있다. AP뉴시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사활을 건 보리스 존슨 총리의 운명이 사실상 이번주 결정될 전망이다. 존슨 총리의 ‘의회 정회’ 조치의 위법성 여부에 대한 대법원 판결 그리고 존슨 총리와 EU 정상들의 유엔총회 만남이 이번주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이 위법을 판결한 뒤 사실상 EU와 마지막 브렉시트 합의 기회인 만남에서 성과를 내지 못할 경우 존슨 총리의 리더십은 바닥에 떨어지고 사퇴 위기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고 22일(현지시간) 영국 언론이 전했다.

영국 대법원은 의회 정회의 위법성 여부를 놓고 지난 17~19일 심리를 벌였다. 정부의 의회 정회 결정에 반대하는 측은 “의회 정회 결정이 사실은 의회가 총리의 브렉시트 계획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밝혔다. 반면 정부 측은 “의회 정회 결정이 브렉시트와 관련없는 통상적인 일”이라면서 “법원이 정치적 결정에 관여해 입법과 사법, 행정권의 헌법적 균형을 틀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영국 대법원은 빠르면 이번주 초에 최종 판결을 내릴 예정인 가운데 가디언은 법률 전문가들을 인용해 “위법 판결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만약 대법원이 의회 정회가 위법이라고 판결할 경우 존슨 총리는 즉시 의회를 다시 소집해야 할 수도 있다. 미리 예정된 의사일정이 없는 만큼 의회가 재개되더라도 어떤 논의를 진행할지는 불확실하지만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전략을 막기 위한 법안의 추가 통과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하원은 이미 정부가 유럽연합(EU)과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브렉시트 3개월 추가 연기를 뼈대로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만약 영국 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리더라도 존슨 총리에게 희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영국과 EU가 브렉시트 합의를 이뤄내면 존슨 총리 역시 기사회생할 수 있다. 존슨 총리는 오는 23일 유엔총회가 열리는 미국 뉴욕에서 EU 지도자들과 만나 브렉시트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이번 회동은 내달 17∼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진행되는 것이다. 브렉시트 시한을 앞두고 열리는 내달 정상회의는 양측이 합의를 이룰 마지막 기회이자 브렉시트 문제의 향방을 가늠할 결정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EU는 브렉시트를 둘러싼 교착상태의 핵심 쟁점인 ‘안전장치’(백스톱·backstop)와 관련해 영국이 이번 EU 정상회의 전까지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전장치는 EU 탈퇴 이후에도 영국을 당분간 EU 관세동맹에 잔류시키는 조치다. 앞서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EU가 지난해 11월 체결한 브렉시트 합의안에 담은 사안이다.

영국을 EU 관세 동맹에 잔류시키면 브렉시트 이후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하드 보더’ 충격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영국 의회는 영국이 관세동맹에 잔류하면 EU 탈퇴 효과가 반감된다면서 계속해서 이를 거부했다. 존슨 영국 총리 역시 EU에 해당 조항 폐기와 재협상을 요구하며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EU는 그동안 영국이 기존 EU 탈퇴 협정과 양립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안하면 검토할 의향이 있다며 대화의 문은 열어뒀다. 영국이 최근 EU에 대안 마련을 위한 문서를 전달하면서 양측이 논의에 막 들어간 상황이다. 다만 존슨 총리의 구상을 담은 개요 수준인데다 EU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보도가 나오가 있어 양측이 접점을 찾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존슨 총리는 유엔총회에서 안전장치 대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EU 정상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설득에 나서겠지만 만만치 않아 보인다.

존슨 총리에게 그나마 위안인 것은 제1야당인 노동당이 브렉시트와 조기 총선 전략에 대한 이견으로 내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제러미 코빈 대표가 노딜 브렉시트 가능선 사라진 뒤 조기총선 우선 개최하자는 입장인 반면 톰 왓슨 부대표는 조기총선보다는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를 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코빈 대표 지지파는 지난 21일 왓슨 부대표를 축출하기 위해 노동당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집행위원회(NEC)에 당의 부대표 자리를 없애는 방안을 놓고 표결을 실시했다가 부결되는 결과를 얻었다. 게다가 여론조사에서도 노동당은 보수당보다 무려 15%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