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가 한국 시장이 갖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크지 않지만 5G 관련 산업을 주도하는 한국이 ‘테스트 베드’ 기능을 하는 동시에 주요 부품 공급원으로서도 중요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화웨이는 최근 미국 제재가 이어지고 있지만 국내 주력인 유·무선 관련 장비 사업에는 영향이 없다고 강조했다.
송카이 화웨이 대외협력 및 커뮤니케이션 사장은 지난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의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활발하게 5G 관련 산업 생태계를 조성한 국가로, 화웨이에게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며 “화웨이가 개발자 지원 등에 향후 5년간 15억 달러(약 1조8000억원)를 투자하는데, 여기엔 한국 시장도 포함돼있다”고 밝혔다. 세계 최초로 5G를 상용화한 데 이어 5G 응용 분야를 넓히고 있는 한국은 통신 장비가 주력인 화웨이에게 신제품의 시험무대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한국이 화웨이 스마트폰과 장비 부품 등의 주요 공급원으로서 갖는 입지도 재확인했다. 한국화웨이 최고경영자(CEO)인 멍 샤오윈 지사장은 “한국에서의 매출이 글로벌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00분의 4정도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국제 공급망)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시장의 매출 비중이 크지 않지만 최근 B2B(기업 간 거래) 영역을 중심으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화웨이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품을 판매하는 ‘톱 5’ 업체로 꼽힐 정도로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의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화웨이가 밝힌 지난 4년간 국내 부품 구매액만 25조원에 달하며, 이중 지난 한 해 구매액만 12조원에 이를 정도로 규모가 커지는 추세다.
다만 미·중 무역 분쟁이 장기화될 경우 세계 시장에서의 판매 위축이 불가피해 지금과 같이 ‘큰 손’의 역할을 이어갈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역시 지난 5월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자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는 ‘거래제한 명단’(Entity List)에 올린 영향으로 향후 매출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화웨이는 최근 미국의 제재에도 국내 사업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멍 지사장은 “한국 시장에 공급하는 유·무선 전송장비는 미국 부품에 전혀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사업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제재로 인해 화웨이가 기업을 대상으로 판매하는 서버 장비 등에서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지만 자사 칩셋인 ‘어센드’(Ascend)와 ‘쿤펑’(Kunpeng)으로 미국산 부품의 대체가 가능해 영향은 일시적일 것이란 입장이다.
화웨이는 이날 5G 네트워크 장비 공급을 이통통신 업계 전반으로 확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멍 지사장은 “한국에서의 사업은 이동통신 3사와 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화웨이의 제품은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어 SA(5G 단독 규격) 장비 도입과 관련해 이통 3사와 논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동안 화웨이는 5G-LTE 복합 규격(NSA) 장비를 LG유플러스에만 공급해왔다. 하지만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화웨이가 5G 통신만 이용해 속도를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SA 기반 장비를 SK텔레콤과 KT에도 공급하게 될 경우, 국내 시장에서의 입지는 크게 높아지게 된다.
화웨이는 하반기 출시가 유력한 폴더블 스마트폰인 메이트X의 국내 출시 여부를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멍 지사장은 “폴더블폰의 출시 계획을 밝힌 이후로 각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한국 시장에서의 출시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하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출시하기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보안 관련 의혹을 받고 있는 화웨이는 한국에서 검증을 통해 이를 해소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지난달 확대 개편해 정부와 업계,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5G보안협의회’에 협조할 뜻도 내비쳤다. 멍 지사장은 “우린 언제든 테스트에 협조하고 검증받을 의향이 있다”며 “이를 통해 백도어 설치 의혹 등을 해소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한국화웨이는 지난 5월 서울 중구에 연구 시설인 ‘5G 오픈랩’(Open Lab)을 열고 국내 중소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과 5G 네트워크 관련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는 화웨이 제품에 대한 국내 시장의 반응과 향후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R&D센터 구축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멍 지사장은 “지금까지 오픈랩에 투자한 금액만 500만 달러(약 60억원)로, 향후 R&D센터 설립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시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다양한 분야로 투자를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상하이=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