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일 ‘리비아 모델’을 비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 결과를 낙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리비아 모델은 선(先) 핵폐기, 후(後) 보상 방식으로 그동안 북한은 이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한반도 비핵화 시계가 다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는 이날 담화문에서 “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리비아식 핵포기’방식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조미(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새로운 방법을 주장했다는 보도를 흥미롭게 읽어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낡아빠진 틀에 매달려 모든 것을 대하던 거추장스러운 말썽꾼이 미 행정부 내에서 사라진 것만큼 이제는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했다.
‘거추장스러운 말썽군’은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뜻하는 것으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볼턴 전 보좌관이 리비아 모델을 고집한 탓에 북한과의 비핵화 실무협상이 지연됐다고 공개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며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이 등장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김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새로운 방법’ 어떤 의미가 함축돼 있는지 그 내용을 나로서는 다 알 수 없지만 조미쌍방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으며 실현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라는 취지가 아닌가 싶다”며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정치감각과 기질의 발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미국 측이 이제 진행되게 될 조미협상에 제대로 된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리라고 기대하며 그 결과에 대하여 낙관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계산법을 제시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요구해 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에서 미국과의 대화 시한을 올 연말로 못 박고 진전이 없을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겠다고 강조했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도 지난 9일 담화를 통해 새로운 계산법 마련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만일 미국이 어렵게 열리게 되는 조미 실무협상에서 새로운 계산법과 인연이 없는 낡은 각본을 또다시 만지작거린다면 조미 사이의 거래는 그것으로 막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향후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표명하면서 북·미 협상이 급진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미 북핵수석대표 협의를 위해 전날 미국 워싱턴으로 떠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도 19일(현지시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조만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담화를 발표한 김 대사는 외무성 순회대사로 임명되기 전 주베트남 북한대사를 지냈으며 과거 6자회담 등 북핵 협상에 참여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