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없이 화성연쇄살인범 누명 쓴 시민들… “피해자 억울함 말끔히 풀렸으면”

입력 2019-09-19 22:47 수정 2019-09-20 00:08
무고하게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렸던 피해자들을 도와온 김칠준 변호사. 뉴시스

전 국민에 충격을 안겼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사건에 연루된 수많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용의선상에 올라 허위 자백 등을 강요받았던 피해자들은 수십년 만에 유력한 용의자가 나오며 이제서야 억울함을 풀게 됐다. 당시 용의자로 몰렸던 사람들의 변호를 맡았던 김칠준 변호사(현 경찰청 인권위원장)는 19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아무런 죄 없이 고통받은 이들의 억울함이 말끔히 풀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무고하게 화성연쇄살인범으로 몰렸던 두 피해자의 혐의를 풀고 경찰의 강압 수사를 막았다. 1991년에는 2차와 7차 살인사건의 용의자였던 박모씨, 1993년에는 4차와 5차 사건의 용의자 김종경씨를 도왔다. 박씨와 김씨는 각각 안양경찰서와 서대문경찰서에 붙잡혀 수사받다가 범인이라고 자백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입회해 적극적으로 변호하며 결국 무혐의로 풀려났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별다른 증거도 없이 범인을 잡겠다며 박씨와 김씨를 상대로 가혹하게 심문했다. 김 변호사는 “경찰은 이들의 자백을 받기 위해 여러 날을 잠도 재우지 않고, 연쇄살인사건 자료를 보여주며 범행 정황을 주입했다”고 기억했다. 경찰은 강요 끝에 자포자기한 박씨가 자백하는 장면을 찍어 언론에 공개하기도 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두 사람은 경찰의 추궁으로 거짓말로 자백했다가도 나를 만나서는 다시 부인하곤 했다”며 “경찰의 강압 수사를 감시하고 방어할 필요가 있었다”고 했다.

김 변호사 도움으로 피해자들은 풀려났지만 이후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고문 후유증과 우울증 탓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김씨가 사망한 이후에도 남은 가족들은 “김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다” “진범인 것을 숨기려 아내가 독살했다”는 낭설에 시달려야만 했다.

경찰 브리핑을 본 김 변호사는 “진범이 잡히지 않아 너무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다”며 “이제라도 억울함을 풀 수 있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에 하나라도 진범을 잘못 변론하진 않았나 하는 마음 한구석의 짐도 털어냈다”고 덧붙였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