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특정했다. 5·7·9차 사건 증거물 3건에서 부산 교도소에 복역 중인 50대 남성 이모씨의 DNA가 발견된 것이다. 첫 사건이 일어난 지 33년 만이다. 당시 경찰 신분으로 수사에 참여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충격적이면서도 반갑다”는 소감과 함께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표 의원은 1990년 7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 경기도 화성경찰서에서 근무했다. 제6기동대 소대장으로 일하던 중 9차 사건이 발생했다. 8차와 10차가 다른 사람에 의한 모방범죄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범인의 연쇄 살인 중 사실상 마지막 범죄였다. 당시 표 의원은 현장을 보존하고 증거를 수색하는 등의 역할을 맡았다.
표 의원은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금도 (그 현장이) 너무 확연히 떠오른다”며 “소나무 숲과 들판, 수거했던 휴지들과 담배꽁초들까지 기억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너무 참혹했고 분노를 넘어 도저히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며 “경찰들조차 ‘도대체 인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당시 범인을 놓쳤던 이유를 설명하며 경찰의 초동 조치가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그는 “처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을 철저하게 보존해야 하는데 그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4건의 살인이 발생할 때까지 연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라며 “독재정권하였기 때문에 사건이 커지면 정권이 부담을 졌다.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지역 파출소장들이 사건의 연쇄성을 묻기 위해 빨리 시신을 치우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경찰들이 분석하기로는 너무 많은 수사 인력이 정돈되지 않은 채 투입됐다”며 “서로 조율해 첩보 정보를 나누거나 합동 수사를 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러 팀이 경쟁적으로 수사해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부족했던 당시 수사 기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표 의원은 “영국 레스터대학교 알렉 제프리 교수가 DNA로 신원을 확인하는 기법을 개발했으나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지 않았었다”며 “초기에 확보할 수 있었던 DNA 증거들이 많이 유실됐으나, 외신에 이 기법이 알려지면서부터 현장 증거물들을 보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표 의원은 진범을 잡지 못한 것에 회의감을 느끼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일화로 유명하다. 그러나 관련 책을 출판하거나 방송을 통해 진범에 대한 예측을 하는 등 이 사건을 끈질기게 추적해왔다. 그는 2012년 한 방송에 출연해 범인이 다른 범죄로 장기간 교도소에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었다. 당시 표 의원은 “범행 수법이 자꾸 강해졌다. 분명 계속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며 “범행이 멈춘 건 본인의 의지가 아니었다”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아마 사망했거나 다른 범죄로 장기간 복역 중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영원히 미제로 남을 줄 알았던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특정하고 증거를 포착했다는 소식에 “믿기지 않았다”는 소감을 밝혔다. 표 의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검거라 이게 가능한 일인가 불신도 들었다”며 “단순 추측이나 진술이 아니라 현장 보존 시료에서 채취한 DNA와 용의자의 DNA가 일치한다는 것을 보니 더 의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이어 “많은 전문가가 범인이 죽었거나, 수감돼 있거나, 진화 과정을 거쳐서 지금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거나 셋 중 하나라고 봤다”며 “지금도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밝혀져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공소시효 완료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기소나 처벌만이 수사의 목적은 아닐 수 있다”며 “진실규명과 피해자 원혼, 유가족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포천 여중생 사건 등 미제 사건들을 놓고 동일범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떨쳐낸 것도 큰 도움”이라며 “수사에 부담을 덜고 사회의 공포심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성과도 크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문지연 기자 jy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