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어른들 때문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었던, 꽃다운 청춘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쓴 시나리오도 아니거니와 후배 감독과 공동 연출까지 해야 했다. 곽경택(53) 감독은 그럼에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에 기꺼이 합류했다. 이유는 간명했다. 잊혀버린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과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가슴속에 움텄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곽 감독은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에게 공동 연출 제안을 받고 처음엔 거절했다. 일단 시나리오의 방향이 나와 맞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주면 하겠다’고 타협을 본 뒤 각색 작업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장사리’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에 불과했던 772명의 학도병들이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 아래 총알받이가 돼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다룬다.
일각에서는 태원엔터테인먼트가 앞서 제작한 ‘인천상륙작전’(감독 이재한·2016) 속편격의 작품이 아니겠느냐는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곽 감독의 손을 거치면서 영화는 이념 간 대립보다 그 틈바구니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추게 됐다.
곽 감독은 “당시 시류에는 ‘인천상륙작전’ 같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있었을 테고, 그 또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나는 실향민 아버지를 둔 사람으로서 그런 이분법적 사고로 영화를 만들지는 못하겠더라”고 털어놨다.
곽 감독은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야기에 살을 붙여나갔다. 이를테면 유격대의 리더 이명준(김명민) 대위 역은 실존인물인 이명흠 대위를 캐릭터화한 것이다. 본인의 개인사도 첨가했다. 7대 독자인 이모부 대신 그의 누나가 입대하려 했었다는 사연을 극 중 설정에 넣었다.
“요즘 한반도 정세를 보면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요. ‘우리 민족의 내란이 아니라 강대국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치른 전쟁이 6·25였다고. 그 말씀이 정확한 것 같아요. 불행한 과거에서 뭔가를 배우지 못하면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메가폰을 잡았습니다.”
영화계 골든 패밀리로 통하는 곽 감독의 집안에는 최근 경사가 겹쳤다. 동생인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제작한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매제인 정지우 감독이 연출한 ‘유열의 음악앨범’도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그는 특히 ‘기생충’이 이룬 쾌거에 대해 “기쁘고 부럽고 자극을 받았다”고 했다. “영화제에서든 극장에서든 똑같은 가치로 평가받는다고 생각해요. 새롭거나 진실하거나. 둘 중 하나는 갖춰야만 어느 쪽에서든 박수를 받을 수 있죠. 작업할 때마다 되새기는 저의 좌우명이기도 합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