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외교책사에 ‘무명’ 오브라이언 지명…볼턴과 달리 ‘가장 안전한 카드’

입력 2019-09-19 09:50 수정 2019-09-19 11:02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로버트 오브라이언 인질 담당 대통령 특사를 지명했다. 오브라이언 신임 보좌관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를 이끌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안보 책사로 활동한다.

외교안보 영역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북핵을 포함한 한반도 정책에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현재로선 오브라이언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과 코드가 맞는 인사로 알려져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새로 지명한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오브라이언, “힘을 통한 평화 강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인선도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그는 “오브라이언을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임명할 것을 알리게 돼 기쁘다”는 글을 올렸다.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캘리포니아를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취재진 앞에 선 뒤 “우리는 힘을 통한 평화를 기대한다”면서 “미국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군대를 재건하기 위해 외교안보팀과 대통령과 함께 협력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오브라이언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뒷받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무명 인사로 외교안보팀 재편”

UC 버클리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오브라이언은 변호사로 오래 활동했다. 오브라이언은 취임 2년 8개월째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네 번째 국가안보보좌관이다. 국가안보보좌관은 상원 인준이 필요없어 오브라이언은 곧바로 업무를 수행한다. 오브라이언은 지난 13일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합격점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 언론들은 오브라이언이 인지도나 중량감에서 떨어지는 인사라는 점에 주목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목받지 못했던 보좌관을 통해 외교안보팀을 재편했다”고 보도했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오브라이언이 유명 인사가 아니다”면서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기에 오브라이언의 경력은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막강 실세’ 폼페이오의 추천

미국 언론들이 꼽은 오브라이언 발탁 배경은 크게 네 가지다. 우선,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의 낙마로 ‘외교 실세’ 자리를 차지하게 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추천이다. 2018년 5월 25일부터 인질 담당 특사로 일했던 오브라이언은 해외에 있는 미국 인질 석방을 위해 폼페이오 장관과 발을 맞춰왔다. 오브라이언이 ‘폼페이오 사단’ 인물로 분류되는 이유다. 오브라이언은 터키와 예멘 등에 구금돼 있던 미국 인질 20명을 고국으로 데려오는 성과를 거뒀다.

전임자 볼턴과 다른 친절한 성격

두 번째는 오브라이언이 싸움꾼이었던 전임 볼턴과 전혀 다른 성품의 인물이라는 점이다. WP는 미 행정부의 당국자가 “오브라이언은 누구와도 사이좋게 지낸다”면서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친절한 사람”이라고 평했다고 보도했다.

WP는 또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드라마 같은 일(문제)’을 겪고 싶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에게 오브라이언은 가장 안전한 선택”이라고 전했다. 폴리티코는 “오브라이언이 발탁된 유일한 이유는 볼턴과 정반대의 스타일이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란에 대해선 강경파

세 번째 이유로는 오브라이언이 이란에 대해선 매파라는 부분이 꼽혔다. 한 때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브라이언 훅 국무부 이란특별대표는 이란에 대해 강경하지 않다는 이유로 낙마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오브라이언은 2016년 펴낸 자신의 저서 ‘미국이 잠잤을 때’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위험을 경고했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유화적인 정책을 비판했다.

오브라이언은 또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과 맺은 ‘핵 합의’를 히틀러가 서방 세계를 속였던 ‘뮌헨 협정’에 비유하기도 했다. 폴리티코는 “오브라이언은 이란에 대해선 (무력 사용을 주장했던) 볼턴과 같은 매파지만 팀플레이를 중시한다”고 전했다.

오브라이언은 성격만 볼턴과 상극일 뿐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선 정통 공화당 성향의 강경파 기조를 지닌 인물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트럼프를 향한 아첨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오브라이언의 아부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오브라이언은 지난 3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앞에 두고 “대통령의 지원이 없었다면 인질 석방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고, 지난 4월엔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위대한 인질 석방 협상가”라는 칭송 트위터 글을 올리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WP는 “오브라이언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대통령 특사를 맡았을 때도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로스앤젤레스와 워싱턴에서 번갈아 지냈다”면서 “그는 대통령 특사이면서도 돈이 되는 재판에 열성이었다”고 지적했다.

무명 기용으로 트럼프 독주 가속화될 듯

NYT는 “오브라이언의 첫 시험대는 이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볼턴 전 보좌관의 퇴장으로 이란에 대한 유화 노선이 검토됐으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시설 피습을 계기로 군사적 공격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내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이란에 대해 공격을 하기도 힘들고, 마냥 엄포만 늘어놓기도 힘든 상황에 빠져있다.

또 비교적 무명인 오브라이언의 임명으로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통행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비건은 국무부 부장관 유력

WP는 “20대 때 천주교에서 모르몬교로 개종한 오브라이언은 미국 행정부에서 최고위직에 오르는 모르몬교도”라고 보도했다. 이어 “그의 지명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회의적이고 애리조나주와 같이 모르몬교도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주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고 지적했다.

한 때 국가안보보좌관 물망에 올랐던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국무부 부장관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오브라이언을 추천한 폼페이오 장관이 비건 대표를 국무부 부장관에 천거했다는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