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의 화성 사건… 원시적 수사에 시민 3명 자살

입력 2019-09-19 00:05 수정 2019-09-19 09:57

화성연쇄살인사건은 국민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이다. 동원된 경찰 연인원이 205만여명으로 단일사건 가운데 최다였고, 수사대상자 2만1280명, 지문대조 4만116명 등 각종 수사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18일 유력 용의자가 붙잡히기 전까지 원시적인 수사기법과 범인으로 몰린 무고한 시민이 자살을 하는 등 우리나라 경찰 강력범죄 수사 역사에 뼈아픈 오욕을 남겼다.

경찰은 1986년 10월 박모(당시 25세·여·2차)씨 살인사건이 발생한 직후 화성경찰서에 수사본부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던 중 같은 해 12월 이모(당시 23세·여·4차)씨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경찰은 이듬해 1월 화성경찰서에 있던 수사본부를 경기지방경찰청 단위로 격상하면서 86년 9월 15일 발생한 이모(당시 71세·여·1차)씨 피살사건을 1차 사건으로 분류하는 등 사건을 재조정했다. 그런 사이 86년 12월 실종된 권모(당시 24세·여·3차)씨 시신이 87년 4월 발견됐다.

경찰은 지방청 단위의 수사본부를 꾸렸지만 번번이 용의자 검거에 실패했다. 무엇보다 원시적인 수사기법 탓에 현장도 제대로 보존되지 않았고 제대로 된 증거도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용의자를 특정하는 과정에서 우범자나 동종 전과자를 잡아들여 폭행해 자백을 유도했다.

이에 엉뚱한 용의자를 검거해 고문하고 강제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수차례 발생했다. 용의자로 몰린 남성 3명이 자살을 하거나 고문 후유증 등으로 숨졌다. 사건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범인은 경찰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일어났다.

경찰은 뒤늦게 수사방식을 바꿨다. 지문대조와 DNA 분석, 모발 감정수사 등을 접목해 용의자의 범위를 좁혔다. 이에 경찰은 모방범죄로 밝혀진 8차 사건에서 모발 중성자 분석법을 수사 사상 처음 적용해 범인을 검거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음모에 특정 중금속 성분이 많이 함유됐음을 확인하고 용의자 직업군을 용접공으로 압축한 것이었다. 또 9차와 10차 사건은 일본에 범인 정액의 DNA 감식을 의뢰하기도 했다.

그러나 10년 넘게 수사에 진척이 없자 경찰은 96년 지방청 단위이던 수사본부를 화성경찰서 단위로 격하시켰다. 결국 명맥만 유지한 채 성폭력 용의자 DNA 대조만 해오던 전담수사팀은 2006년 4월 10차 사건 공소시효 만료를 기점으로 해체됐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후에도 관련 제보를 접수하고 보관된 증거를 분석하는 등 진범을 가리기 위한 수사를 계속해왔다. 이어 DNA 기술 개발이 이뤄질 때마다 증거를 재차 대조했다. 결국 경찰은 18일 첫 사건 발생 후 33년 만에 이 사건의 유력 용의자를 특정·공개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