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전 대법관 “계층 사다리 막는 사회 옳지 않아”

입력 2019-09-17 18:26
김영란 전 대법관. 연합뉴스 제공

국내 최초 여성 대법관이자 ‘김영란법’으로 우리사회의 뿌리 깊은 부정청탁 관행을 바꾼 김영란 전 대법관이 ‘판결과 정의’라는 책을 냈다.

김 전 대법관은 17일 서울 정동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거리를 두고 지나온 역사와 앞으로 펼쳐질 역사를 생각하면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판결들을 보자는 취지에서 쓰고자 했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

그는 또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막아버리는 사회는 옳지 않다”면서 “판사들도 그 사다리가 좁아진 느낌이 든다. 판사들의 생각이나 제도 자체에 사다리가 막혀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법관들에게 더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층 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 풍토에 대해 “계층 이동이 비교적 쉬웠고 갈망이 컸던 사회기에 좌절감도 많이 느낄 수 있다”며 “좌절감을 완화하고 열망을 키울 수 있도록 제도를 구성해 가야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가 열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게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책 첫 장에서 성차별 문제를 다룬 것에 대해서는 “(성차별은) 단순히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별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화에 의해 구축된 위계질서의 문제”라며 “가부장제에서 우리 몸에 체화된 의식이 남혐과 여혐, 계층 간 분리 문제 등을 다 자아내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가부장제를 바라보는 법원의 태도에 대해선 “대법원은 그 변화를 다소 보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여러 판결을 보면 대법원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색하게나마 긍정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책에서는 과거사 청산 문제도 다뤘다. 그는 “과거사 청산에 대해서는 우리나라가 청산이 이렇게 안 돼 있는가, 어떻게 해야 했는가 생각하면서 대법 판결을 비판했다”고 설명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번 책에서 정의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지난 2004년부터 6년간 대법관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과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김영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