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우 평양’ 감독 “북한 사람들, 자기 결정적 삶 누리길”

입력 2019-09-17 10:45

영화 ‘헬로우 평양’을 연출한 그레고르 뮐러, 앤 르왈드 감독이 한국 개봉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국 관객들과의 뜻 깊은 만남을 고대한다며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헬로우 평양’은 독일인 그레고르 뮐러의 두 번에 걸친 평양 여행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북한 정부의 동의나 허가 없이 영화의 전 과정을 비밀 촬영으로 진행됐다. 이 영화를 연출한 그레고르 뮐러, 앤 르왈드 감독은 17일 수입사 비싸이드픽쳐스를 통해 서면 인터뷰를 전했다.

인터뷰에서 두 사람은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부터 당시의 에피소드까지 상세히 털어놨다. 영화인답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촬영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고, 시간이 부족했음에도 두 번째 평양 여행을 넣어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이들은 “비밀 촬영 때문에 일부 장면들은 사용할 수 없어 아쉬웠다. 무엇보다 외줄을 타듯 긴장의 연속에도 최대한 영화적 자료를 위해 위험한 고비들을 넘겼다”고 회상했다. 이어 “평양만이 지닌 매력이 있다”면서 “독일도 한때 분단국가였기에 평양 여행에 대한 소회가 남달랐다”고 얘기했다.

뮐러 감독은 지난 3월 방한해 서울 마라톤에도 출전했다. 문화와 정치를 떠나 환영해주는 한국인들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양을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행복,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영화 ‘헬로우 평양’의 한 장면. 비싸이드픽쳐스 제공

-2013년, 2017년 두 번의 여행을 영화로 만들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실제 제작 기간은?
“무엇보다 우리는 운 좋게도 평양에만 있지 않았다. 가이드들이 북한 전역의 다른 많은 장소에도 데려다주었다. 게다가 우리는 둘 다 영화인이기 때문에, 좋은 카메라를 이용할 수 있었다. 우리는 여행할 때 거의 대부분 함께 간다. 특히나 이렇게 고립되고 폐쇄적인 나라는 가능하면 함께 경험하고 싶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촬영을 한다. 2013년에 돌아와서 편집을 했지만, 이 프로젝트는 여유 시간을 활용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연됐고, 많은 것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런 결과물로 나와 기쁘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우리가 두 번째 평양 여행을 넣을 수 있었고 영화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밀 촬영이지만 상당히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앵글도 다양한데,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진행했는가?
“물론, 촬영이 항상 쉽지 않았다. 일부 장면은 주변 음향이 시끄러웠고 조명도 좋지 않아 그 장면의 사용이 매우 어려웠다. 따라서 상황에 맞게 자료를 기록하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 카메라를 사용하여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 적색 녹화 등은 테이프로 가리고 촬영에 임했었다.”

-비밀 촬영 과정에서 위험하거나 위기의 순간이 혹시 있었나.
“여러 종류의 위험한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중 일부는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외줄타기 하듯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영화적 자료를 가져오면서 우리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북한의 환대에 정말 감사하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았다. 그렇지만 동의 없이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여러분에게 이 영화를 보여줄 수 없었을 것이다.”

-폐쇄되어 있지만 ‘평양’만의 매력이 있다면? 여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인가.
“평양은 전쟁 동안 90%가 파괴되었다. 결과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회주의 모델로 짓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평양 건축물은 이념적 목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이 사회주의 모델 도시를 걷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북한의 큰 축제인 ‘아리랑 축제’를 볼 수 있어서 운도 매우 좋았다. 축제 기간 동안 찍은 사진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고 지금 봐도 소름이 끼친다. 거기에 평양 마라톤을 뛴 적이 있는 극소수의 외국 선수들 중 한 사람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이드의 감시를 받지 않고 시내를 달린 것 또한 놀라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 평양에서 본 것을 여러분만의 관점으로 볼 수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흥미로운 경험을 함께 할 수 있다.”


-실제 여행 기간(2013, 2017년)과 전체 촬영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 혹시 영화에 넣고 싶었으나 못 넣은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2013년과 2017년 우리는 두 번의 북한 여행 기간 동안 영화에 포함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잊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는 김일성, 김정일 묘역 참배였다. 김일성 생일 직전인 2017년 4월에 그곳에 있었다. 북한 사람들은 묘지를 순례했다. 우리는 보안 대책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이 부분을 영화에 포함시킬 수 없었다. 묘지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격 숭배였다. 도처에 황금 액자를 쓴 두 지도자의 사진이 있었다. 거대한 방들은 군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김일성 열차는 물론 자신의 메르세데스 벤츠 리무진까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홀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에 되어 있었다. 여기에 두 북한 지도자의 시신이 있었다. 이건 확실히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다. 묘향산의 ‘국제친선관람관’도 마찬가지다. 이 관람관은 김 씨 일가를 기리기 위해 국민들이 가져온 선물이 전시되어 있다. 피델 카스트로의 돌격 소총, 스탈린의 장갑 리무진, 지미 카터의 재떨이…. 그러나 무엇보다 가이드들과의 대화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로웠다. 그들은 평소의 선전 기계가 아닌 인간적으로 북한의 일상생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물론 북한 주민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에 대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독일도 분단국가였다. 평양을 여행하면서 남다른 소회가 있다면.
“1945년 이후의 독일과 비슷한 한반도의 역사는 외국의 지배와 강대국의 이익으로 특징지어진다. 우리는 둘 다 옛 미국의 통제를 받으며 베를린 장벽 붕괴의 여파 등으로 인해 서베를린에서 성장했다(그레고르 감독은 1980년대 초에 태어나 1980년대 말, 앤 감독보다 '서베를린 섬'에서 더 오래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린 시절은 모두 정치적 격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었다. 더 이상 어렸을 때 겪을 수 없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 시스템을 거친 경험들, 예를 들어, 우리는 역사 수업에서나 이전 동독(GDR) 시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동독에서 STASI(국가안보부)의 역할을 알 수 있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체제를 다루고자 하는 열망은 평양 여행 내내 있었던 것 같다.”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어땠는지, 만약 없다면 방문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그레고르 감독은 올해 3월 서울의 마라톤에도 출전했는데 정말 놀라웠다. 사람들이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그들의 정치적 배경이나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스포츠가 어떻게 다른 문화와 결합되는지 보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이게 바로 한국 관객들에게 지난 몇 달 동안 영화를 만든 모든 친구들과 우리 영화를 공유하기를 고대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헬로우 평양’의 관람 포인트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이 작품을 꼭 봐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평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이 영화가 수십 년 동안 북한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여기에 덧붙여 이 나라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 생계에 치열하거나 정치적 사건에 대한 무관심한 사람들 모두가 이 나라가 움직이는 톱니바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지난 6월 4일 독일에서 진행된 상영회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언론은 주로 정치 사건을 중점 보도하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북한의 신비’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관객들은 이런 고립된 나라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되어 기뻐했다. 영화는 이 주제에 대해 민감하게 소개하고 우리가 세운 가정을 확인하면서도 진부함과 편견 또한 배제했다. 독일에서 열린 행사를 통해 많은 대화를 나눴고 우리는 개개인이 편견을 갖고 북한을 바라봤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줬다. 그 간극은 관객들이 교과서적인 이야기만을 접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만 그 주제를 적극적으로 다룰 수 있었고 그들이 스스로 의견을 갖게 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아마도 그건 인생에서 매우 유용한 경험이 될 것이라 본다.”

-앞으로의 남북 관계의 방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모든 인간은 그들의 기원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자유와 행복, 평화를 추구한다. 모든 정권 뒤에는 정권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다. 북한의 미래 세대가 자기 결정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국가의 개방이 절대적으로 바람직하다.”

-이 영화를 보게 될 한국의 예비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 개봉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평양에 대한 영화인 ‘헬로우 평양’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너무 궁금하다. 많은 의견이 오갈 수도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한국 관객들이 즐겁게 관람하고 영화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