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와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정치권이 진통을 겪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도 찬성과 반대 의견이 갈리고 있다.
국민일보가 16일 형법 전공 법학자와 변호사 등 10명에게 의견을 물은 결과 수사공보준칙 개정 방향에 대해선 대부분 원론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 브리핑 및 언론 보도로 사실상 유죄로 추정됐던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찬성 이유다. 하지만 선출직 공무원이나 국회의원 등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에 대해선 피의사실 공표 금지로 국민들의 정보 획득이 상당부분 차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수사기관의 수사는 밀행성이 원칙이나 이들의 권력남용을 견제할 장치는 유지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태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혐의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피의 사실이 너무 일찍 공개돼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며 “이는 공정한 수사와 재판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같은 대학원의 정승환 교수도 “그동안 무분별하게 이뤄진 피의사실 공표로 국민의 알 권리가 충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의사실 공표는 공익을 위해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부작용이 더 컸다”고 지적했다.
윤재원 JW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유명인의 경우 수사기관 출석 시 일명 포토라인에 세우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며 “이런 망신주기식 보도는 여론에 의한 재판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누구나 피의사실 공표로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제한 아래 공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마련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기소 전 형사사건에 대해서는 혐의 사실 및 수사 상황 일체를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오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거나 범죄 피해가 급속히 확산될 때, 범인 검거 등 국민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 등에만 매우 제한적으로 정보 공개가 가능하다. 이 규정은 공소 제기 후에도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최소한의 정보만 공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한 법무부 안이 국민의 알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조세희 밝은빛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공인이 어느 범죄에 연루됐는지는 시민이 투표권 등을 행사할 때 필요한 정보와 밀접하게 연결돼있다”며 “일반인에 대한 수사 사실은 공표를 자제해야겠지만 정치인이나 공인은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공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성민 변호사는 “피의자 인권이냐 국민의 알 권리냐를 저울질 했을 때 그동안은 알 권리 차원에서 피의사실 공표가 어느 정도 허용됐던 것”이라며 “피의사실 공표가 사실상 금지되면 국민들이 정보를 알 수 있는 경로가 차단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범한 YK법률사무소 변호사도 “피의사실이 무분별하게 알려지는 건 문제”라면서도 “국민의 관심이 큰 사건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를 금지하면 또 다른 의혹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에 대한 견제가 약화될 수 있다는 것도 논쟁거리다. 박 변호사는 “수사 절차가 투명해졌다지만 그들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며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려는 외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이 주요 사건의 수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변호사는 “정치인이 연루되거나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건은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며 “기소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을 견제하려면 언론이 수사 상황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하 교수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로 밀실수사나 수사 은폐가 우려된다는 건 지금같은 세상에서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라며 “변호사의 조력, 언론 제보 등 통로는 많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기소 이후에 필요한 내용이 공표되는 것만으로도 국민의 알 권리는 충족된다”고 주장했다.
피의사실 공표와 국민의 알 권리를 별개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정 교수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검찰 수사 국면에서 현재 언론이 자체 취재해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며 “언론은 여러 방법으로 수사기관의 잘못된 행태를 취재하고 비판하며 견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는 수사기관이 해서는 안 될 것들을 규정한 것이고, 국민의 알권리는 다양한 방안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0명의 전문가들은 피의사실 공표와 관련한 예외기준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 사건이 사회에 미칠 파장, 사건 자체의 내용, 관련 인물 등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지를 놓고 검찰, 경찰, 언론 및 사회 구성원들의 시각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의사실 공표죄가 사문화돼 있었기 때문에 현실에 맞는 기준을 만들어나가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검경은 본인들의 치적을 선전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사건만 골라 언론에 알리는 등 피의사실 공표를 악용해온 측면이 있다”며 “수사기관의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도록 공표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준 마련과 별개로 조국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와중에 법무부가 훈령을 개정하는 건 충분히 오해를 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컸다.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조 장관이 피의사실 공표 금지 방안을 공평무사하게 추진할 여건이 되는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피의사실 공표 문제는 검찰과 경찰, 언론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필수적인데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는 조 장관이 이를 추진하기엔 명분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안규영 황윤태 기자 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