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스타인’ 무너진 골리앗… 영화계 거물의 추악한 민낯 [리뷰]

입력 2019-09-16 16:28 수정 2019-09-16 17:00
할리우드의 거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의 하비 와인스타인(가운데). 당시 함께했던 기네스 팰트로(왼쪽)와 카메론 디아즈(오른쪽)도 와인스타인의 스캔들이 불거진 후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2017년 10월 5일, 미국 뉴욕타임스가 터뜨린 특종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 그간 의혹으로만 떠돌던 그의 성범죄 사실이 낱낱이 폭로된 것이다. 30년간 이어져 온 무거운 침묵을 깨고.

미국 영화계에서 와인스타인은 무소불위의 존재였다. 영화사 미라맥스의 설립자이자 와인스타인 컴퍼니의 회장. ‘굿 윌 헌팅’ ‘반지의 제왕’ ‘킬 빌’ ‘시카고’ 등 걸출한 작품들을 배출하며 ‘오스카 제조기’로도 불렸다. 이윽고 밝혀진 그의 실체는, 추악한 성범죄자에 불과했다.

영국 BBC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와인스타인’은 와인스타인의 성공과 몰락의 과정, 특히 그동안 자행된 파렴치한 범죄가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두루 다룬다. 그 해답은 영화의 원제에서 짐작해볼 수 있다. ‘Untouchable(건드릴 수 없는)’.

영화 '와인스타인'의 스틸컷. 배우 니콜 키드먼(오른쪽) 역시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폭로에 동참했다.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와인스타인은 기네스 팰트로, 안젤리나 졸리, 레아 세이두 등 유명 여배우들을 비롯해 영화사 직원, 영화 관계자에 이르기까지 무려 100여명에 달하는 여성들에게 성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 일은 간단했다. 차고 넘치는 돈과 막강한 권력이 있었으므로.

영화에는 와인스타인의 기행을 지켜봤거나 직접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담겼다. 제작진은 약 400명의 관련자에게 접촉해 이 중 128명을 만났고 9개월간의 설득 끝에 최종적으로 29명의 목소리를 실었다. 배우 로잔나 아퀘트, 파즈 드라 휴에타 등 피해자들도 아픈 기억을 꺼내놓는다.

증언은 대부분 겹친다. 호텔방으로 불러내 알몸으로 마사지를 요구하는 식이었단다. 응하면 좋은 배역을 주겠다며 회유하고 거부하면 이 바닥에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라 겁박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건 누구도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주지 않을 거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터져 나온 용기어린 고백들은 철옹성 같던 존재를 무너뜨렸다. 그렇게 우리는 깨닫게 됐다. 다윗과 골리앗처럼 약자도 얼마든지 강자를 이길 수 있다는 걸. 이후 SNS에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번졌다. 전 세계 여성들이 연대해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에서 와인스타인의 전 직장동료는 이런 말을 남긴다. “이제 세상이 달라졌어요. 더 좋은 세상이 됐죠.” 다수의 다큐멘터리로 영국 아카데미상에 네 차례 노미네이트된 여성 감독 우르술라 맥팔레인이 메가폰을 잡았다. 26일 개봉. 99분. 15세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