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내 수출 중심의 산업단지가 직격탄을 맞자 지방 정부가 외국기업 붙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산업단지에 입주한 외국기업들에게 각종 보조금과 관세 면제 혜택을 주면서 해외 이전을 막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러브콜에도 불구하고 일부 산업단지에서는 외국 기업들이 속속 해외 이전을 결정해 단지 가동률이 떨어지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다국적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 있는 중국 장쑤성 쑤저우 산업단지(SIP)는 올해 상반기 수출이 전년 동기대비 10% 감소하고, 수입도 15% 줄어들어 지방 정부가 외국기업 관리에 올인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6일 전했다.
쑤저우 산업단지는 뉴욕 맨해튼의 5배 면적에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 1994년 조성한 첨단단지로 중국 산업발전의 또 다른 상징으로 여겨진다. 마이크로소프트, 지멘스, 하니웰, 파나소닉 등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해 초기 10년 동안 쑤저우 경제를 두 배로 끌어올렸다. 5000개 가량의 외국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쑤저우 산업단지는 올 상반기 쑤저우 전체 생산의 14%를 차지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와 중국의 성장 둔화, 임금 상승 등으로 제조 업체들의 대규모 이탈이 우려되고 있다. 쑤저우의 국내총생산(GDP) 증가는 올 상반기 6%로 둔화돼 장쑤성 전체 GDP성장률(6.5%)에 크게 못미쳤다.
상황이 악화되자 최근 장쑤성 관리들은 산업단지내 외국기업들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며 적극 돕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쑤저우 산업단지 수출입 물량에서 60~70%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미중 무역전쟁의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지방정부는 외국기업들이 동남아로 떠나는 것을 막기위해 보조금과 관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스위스 패키징 업체인 SIG 콤비블록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주문량이 8%가량 줄었지만 대부분 거래업체가 중국에 있는데다 미국산 제품에 부과된 10%의 관세는 지방정부가 보조금과 관세 면제 등으로 지원해 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장비 수입시 중국 정부가 10%의 관세를 면제해주기 때문에 10억 위안(미화 1억4190만 달러)어치의 기계를 수입하면 1억 위안을 절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한 경쟁업체가 베트남에 공장을 새로 설립했지만, 중국 지방정부 보조금 혜택 등에 이끌려 30억위안(약 5000억 원)을 투자해 쑤저우에 새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외국 기업들은 무역전쟁 여파로 대미 수출이 어려워지자 생산 물량을 중국 내수시장으로 돌리는 등 생산 및 판매 구조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독일의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과거 쑤저우에서 생산한 자사 제품의 30%를 수출했지만 내수시장을 공략해 현재 수출 물량은 10% 정도로 줄어들었다. 회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는 마케팅 지원뿐아니라 연구개발과 수출에 대한 세금 환급도 받고 있다”며 “우리는 고객을 따라간다. 여기에 고객과 공급업체들이 있기 때문에 쑤저우에 새 공장을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쑤저우 반도체 공장은 미·중 무역전쟁이 벌어지자 미국 수출 물량을 중국 내수로 돌리는 등 생산량 재배치를 통해 위기를 넘기고 있다. 이 회사의 최대 수출 고객은 미국 애플이고, 중국내 최대 고객은 화웨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는 미국에서 들어온 주문 물량은 모두 서울과 동남아 공장으로 돌렸지만, 다른 나라에서 주문이 들어와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SCMP에 말했다.
하지만 쑤저우 산업단지에서 30km 정도 떨어진 쿤산 보세공단은 1908년대 이후 세계 전자제품 공금 중심지로 명성을 날렸지만 대만 전자업체들이 속속 떠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장쑤성 당국은 홈페이지를 통해 대만의 컴팔, 위스트론, 플렉시움, 인벤텍 등 애플 공급업체가 중국 외 지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쿤산의 많은 공장에서 생산라인 근로자들의 낮 교대 근무가 중단되면서 출퇴근 시간대 교통이 한산해졌다고 현지 보안요원들이 전했다. 전자제품 제조업체 위스트론의 직원들은 “아직 급여는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미래가 걱정된다”며 “외국 기업이 타격을 받으면 중국 기업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