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임 경제산업상이 대(對) 한국 수출규제 강화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 조치라고 주장하며 향후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일본 국민들은 ‘관계개선’ 입장과 ‘어쩔 수 없다’는 쪽으로 여론이 나뉘는 모습이다.
스가와라 잇슈 경제산업상은 일본 정부가 한국에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강화한 것이 “기술이전이나 무역 등을 적절히 관리하는 과정에서 WTO 규칙에 매우 정합(꼭 맞음)하다”고 말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16일 보도했다.
그는 “대량 파괴 무기나 일반무기(전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안전보장상의 문제는 각국이 불확산 방침을 공유하고 있다”며 “일탈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도 주장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 정부의 관리소홀에 기인한 것이고, GATT 21조가 규정한 ‘필수적 국가안보 보호 예외조치’에 해당하므로 WTO 위반이 아니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하지만 WTO가 GATT 21조를 둘러싼 분쟁을 재판한 사례는 거의 없고 예외 규정 적용이 인정되기 위해선 안보상 상당히 중요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않고 있다.
스가와라 경제산업상은 그러면서 “WTO나 수출관리에 관한 부분은 한국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겠다”라며 “스탠스(자세·태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여 한국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뜻을 밝혔다.
한국의 WTO 제소에 대해서는 “WTO 규칙으로는 (제소 후) 10일 이내에 협의할지 말지 판단하지만, (우리는) 대응할지 안 할지를 포함해 적절히 판단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WTO를 통한 한국의 분쟁 해결 시도에 한동안 반응하지 않고 시간을 끄는 전략을 함께 검토 중인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에 대응해 WTO 제소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WTO 분쟁은 3년 이상 장기화할 수 있어 한·일간 무역갈등도 그만큼 길어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국민 10명 중 6명은 일본 정부가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해 대화를 통한 외교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이니치신문이 14~15일 586명(응답률 84%)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한 결과 57%가 이같이 응답했다. “계속할 필요가 없다”는 응답은 29%로 10명 중 3명 꼴이었다. 마이니치는 한·일 관계에 있어 대화를 중시해야한다는 여론이 부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요미우리가 13∼1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한 한·일 관계가 개선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65%로 조사됐다. 이 경우 ‘한국이 수용하기 어려운 주장을 하는 한’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편향 응답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이 한국에 다가서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응답은 29%였다.
일본 정부가 2차 ‘경제보복’ 조치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에서 제외한 결정에는 마이니치 설문조사에서도 64%가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21%에 그쳤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