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라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1959년 개봉한 영화부터 떠올릴 것이다. 서기 26년 로마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고난과 역경, 사랑과 헌신으로 점철되는 한 남자 ‘유다 벤허’의 숭고한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장대한 서사와 압도적인 규모로 명작 반열에 올랐다.
원작은 루 월러스가 1880년 발표한 동명 소설. 그러한 대작을 무대로 옮기는 일은 결코 녹록치 않았을 터다. 2017년 초연된 창작 뮤지컬 ‘벤허’는 그러나 유의미한 호평을 이끌어냈다. 드라마틱한 연출과 수려한 선율로 방대한 서사를 풀어내며 국내 대형 뮤지컬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년 만의 재연에 합류한 배우 한지상(37)은 원작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고 털어놨다. 최근 서울 용산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초연의 벤허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번 재연에서 보편성이 더해지면서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보편성과 동시에 뮤지컬로서의 특수성도 늘어났어요. 그 덕에 저처럼 삐딱한 마이너 성향의 배우에게도 기회가 온 거라고 생각해요. 의외성 있는 표현을 많이 시도했는데, 완급조절을 해주신 왕용범 연출님께 감사해요. 영화계에 봉테일이 있다면 뮤지컬계에는 왕테일이 있다고 할까요(웃음).”
유다 벤허는 귀족에서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한 인물로, 디테일한 감정 연기가 요구되는 역할이다. 한지상은 “대사와 가사들이 하나 같이 주옥같다. 한 올 한 올 소중하게 표현하고 싶어 모든 어절마다 힘을 싣게 되더라. 더 정확하게 전달하고픈 욕구 때문”이라고 얘기했다.
작품의 웅장함을 담아낼 가창력도 빼놓을 수 없다. 재연에는 14곡의 넘버가 추가됐는데, 특히 ‘살아야 해’라는 곡은 모든 걸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벤허의 결단에 설득력을 부여하며 인물을 입체화시킨다. 한지상은 “이 곡이 내가 ‘벤허’에 참여할 수 있는 명분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살아야 해’는 이번 재연의 시그니처예요. 살아남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죠. ‘버티자, 이겨내자, 해내자.’ 그 포효에는 힙합이나 록과 비슷한 저항의 마인드가 담겨 있는데, 그 점이 참 좋았어요. ‘살아야 해’가 제게 미친 영향력은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그는 “로마에게 핍박받은 유대인의 역사가 일제치하를 겪은 우리 민족의 한의 역사와 닮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꼭 우리 역사인양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공감대는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들은 어떻게 한을 극복했는가. 우리는 지금도 극복하는 중이잖아요.”
2003년 연극 ‘세발자전거’로 데뷔한 한지상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프랑켄슈타인’ ‘데스노트’ ‘아마데우스’ 등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통해 실력과 스타성을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예능 ‘불후의 명곡’(KBS2), 드라마 ‘해치’(SBS) 등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하는 그의 원동력은 다름 아닌 ‘무대’라고 했다. “제가 강박처럼 지니고 있는 건 ‘긍정의 자격지심’이에요. 나부터 잘하자, 지킬 건 지키되 변화를 망설이지 말자, 끊임없이 내 자신을 업그레이드시키자. 저의 목표이기도 해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