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2달…피해자 방치, 불이익은 여전

입력 2019-09-15 17:00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두 달째 시행되고 있지만 사측이 괴롭힘 신고를 한 피해자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진퇴사를 하더라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15일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으로 기업들이 취업규칙을 개정하고, 임직원 대상 예방교육을 하는 등 직장이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회사와 상사들이 여전히 갑질을 일삼고 있다”며 문제 사례들을 공개했다.

A씨는 상사의 폭언과 해고 협박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이달 초 대표이사를 만나 괴롭힘 신고를 했다. 하지만 대표이사는 “그런 것도 못 참아내느냐. 내게 보여준 자료, 네가 한 얘기는 안 보고 안 들은 걸로 할 테니 일이나 하라”며 A씨의 신고를 방치했다. B씨는 같은 사안에 대한 경위서를 수차례 반복해서 쓰도록 강요한 상사의 괴롭힘에 시달리다 지난달 회사에 신고했다. 그러나 사측은 편향된 조사 끝에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괴롭힘으로 직장을 그만뒀지만 ‘자진퇴사’로 분류돼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배송 업체에서 일하는 C씨는 사장의 “때려치우라”는 퇴사 종용과 폭언·욕설에 시달리다 지난달 퇴사했다. 그런데 사장은 C씨의 퇴사 사유를 자진퇴사로 처리했고, 실업급여도 지급하지 않았다. 퇴근 후 시도 때도 없이 사장의 업무지시를 받던 D씨도 고민 끝에 스스로 회사를 그만뒀는데,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는 고용노동부의 답변을 받았다.

직장갑질119는 “갑질 문제 해결을 기업인의 양심에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가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며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경우, 전체 직원에 대한 무기명 설문조사와 불시 근로감독을 통해 직장갑질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괴롭힘으로 인한 퇴사가 자발적 퇴사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다. 괴롭힘으로 자진퇴사한 경우에도 실업급여가 제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우’를 고용보험법 시행규칙에서 인정하는 정당한 자발적 퇴사 사유로 추가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직장갑질 119에 따르면 괴롭힘 방지법 시행 전 하루 평균 65건이었던 직장갑질 제보는 법 시행 이후 102건으로 늘었다. 괴롭힘 관련 제보는 전체 제보의 58%로, 금지법 시행 이전(28.2%)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